“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지난 2015년에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12월 28일에는 위안부 합의라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에는 아직도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부산의 소녀상 설치로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각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한국이 한일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이에 무관심한 상황입니다.”

위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9월 21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모든 비용을 부담한 ‘한일공공외교 심포지엄’에서, 이 행사를 공동주최한 대한민국 유수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연구소의 당시 소장이 많은 일본인 청중들 앞에서 했던 인사말의 일부이다.

한일 정부 간의 ‘12.28 위안부 합의’를 잘된 합의라고 평가하면서, 부산소녀상에 대한 한국정부의 조치가 미흡함에 유감을 나타내는 인사말로 읽히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사전 정보 없이 인사말을 음미해 보면, 일본정부 관계자가 한 발언으로 생각될 정도다. 이 자리에는 한국의 고위 외교관들도 있었지만, 그의 발언에 문제제기를 한 외교인사는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했다는 자부심으로 적폐청산을 하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점의 문재인 정부는 이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 출범 초기였기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 능력이 그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 수준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지지도가 부정평가가 더 높게 나오는 추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꾸준히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긍정평가에 대일외교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디테일이 필요한 대일외교는 우리 국민들의 대일감정 수준에서 결정된다.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비상상황 발생 시에 우리 국익을 지키기 위한 방안마련이 절실하다. 일본은 아베총리가 사임하거나 유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해 안에 일본 역사상 최장기간재임 총리로 등극하게 된다.

4선 12년 집권을 맡기자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내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런 아베총리이지만 대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늘 불안해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12.28 위안부 합의’의 실질적 파기, 강제징용노동자들에 대한 배상판결 등 과거사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으며, 남북 간 화해협력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고, 북한에게 지속적인 추파를 던지고 있음에도 어떤 반응도 얻지 못하고 있는 등, 아베 총리에게 대한반도 문제는 아킬레스건이 되어가고 있다. 오로지 트럼프에 의지하고 있지만, 트럼프도 ‘제 코가 석자’가 되어버려 언제 외톨이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일외교에 대해 확실하게 우위를 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이다. 전략이 부재하고, 전술을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지렛대 삼아 과거사 문제에 쐐기를 박고, 초계기 비행과 같은 군사적 위협을 도발로 규정하여 동북아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다움으로 한반도 주변의 정치질서를 재편성하는 커다란 전략을 마련할 시점인데, 문재인 정부다움에 대한 자기상황인식이 마련되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해 보인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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