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보좌진 칼럼] 막말의 정치학
[여의도 보좌진 칼럼] 막말의 정치학
  • 일요서울
  • 입력 2019-03-15 15:56
  • 승인 2019.03.15 16:52
  • 호수 1298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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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지칭하면서 정치권이 혼돈에 빠졌다. 민주당은 철 지난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면서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고, 한국당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제소로 맞서고 있다. 겨우 열린 국회가 나 원내대표의 막말 발언으로 뜻밖에 암초를 만났다.

정치에서 막말과 거짓말은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한국정치뿐 아니라 선진국이랄 수 있는 서구정치권에도 막말과 거짓말은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는 SNS의 일상화로 정치가 대중과 직접 접촉하는 면이 넓어지면서 실언에 가까운 막말과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유포되는 거짓말이 일상화되고 있다. 어느덧 정치의 부영양화는 세계적인 양상이 되어 버렸다.

나 원내대표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종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그년’으로 지칭했다 결국 박 대통령 면전에서 사과해야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여정부 시절, 연극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육실할 놈’, ‘개잡놈’이라고 비하해 물의를 빚었다.

나 원내대표는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보는 것 같다. 본인은 대통령을 직접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지칭한 적이 없고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소리를 듣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막말의 여파로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당 지지도도 상승했고, 원내대표 당선 이후 처음으로 당 안팎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보통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대표연설을 하게 되면 적어도 일주일 전, 많으면 한 달 전부터 연설문 준비에 들어간다. 외부 전문가에 자문을 구하고, 분야별로 이슈를 선정해서 당 정책파트와 조율을 거쳐 원고 작업을 하고 몇 번의 독회와 퇴고를 거친다. 나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 대변인’ 발언은 해당 문안 자체가 고도로 기획되고 준비된 연설인 것이다.

정치인의 말은 신념이 담기지 않은 경우는 있어도 뚜렷한 정치적 목적 없이 발화되는 경우는 없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극보수 세력과 전통적 지지층을 겨냥한 포퓰리즘적 발언이었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미국의 트럼프, 필리핀의 두테르테, 브라질의 보우소나루의 성공 방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극단의 언어, 극단의 정치는 마약과 같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지지자들은 사이다 발언이라도 결집하며 지지도는 오른다. 스스로도 흔히 경험하기 힘든 환호와 지지에 도취되고 주변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나 원내대표는 결과적으로 극보수 세력의 당내 주류화라는 위험한 사이클에 브레이크를 거는 길이 아닌 올라타는 길을 선택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은 자신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서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근본 원인을 정치에서 찾으면서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보수정당인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해롭다는 결론을 내린다. 공화당이 가진 이념과 정책이 살인과 자살의 증가를 부른다는 것이다. 길리건의 연구는 정파적 관점을 떠나 정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인의 막말은 사회적 전염성을 가진다. 무분별한 언론이나 SNS를 통해 대중에게 급속히 퍼지고, 막말은 사회적 소통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품격 있는 정치언어가 그립다.

<이무진 보좌관>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