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민들은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 어플에 설치된 미세먼지 수치를 보며 일과를 시작한 지 오래다. 커피숍에서 미팅을 할라치면 갑자기 “붕~”하는 재난 문자를 동시에 받는 것도 이젠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가도 밤하늘에는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가히 ‘사회재난’을 넘어서서 ‘재앙’ 수준이라 하겠다. 4,5년 전 이맘때만 해도 중국 발 황사에 조심하는 정도였다가 꽃피는 봄이면 마무리되곤 했지만, 지금은 미세먼지 주의보가 없는 날이 없고 마스크로 가려도 만성 비염에 눈물 콧물이 끊일 날이 없다.

미세먼지의 원인이 중국 발이라는 국가 간 분쟁 소지부터 탈원전 때문이니, 석탄화력발전 때문이니 하는 사회갈등까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대책이라곤 진공 흡입차량 도입과 알리미 신호등 설치, 실시간 대기오염 정보제공 등 고작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의 처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내뿜는 ‘정치권 發’ 미세먼지에 더 숨이 막힌다. 더불어민주당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강성’ 연설을 문제 삼아 연일 “탄핵 부정과 국정농단의 적폐세력”이니 “가짜뉴스와 거짓선동으로 일관된 연설”이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심지어 “일베 방장” 등의 격한 표현과 “사시 공부할 때 헌법 공부를 안 하나”는 식의 비아냥과 조롱은 윤리특위 맞제소 상황까지 초래했다.

서로 과도한 대응과 식상한 ‘내로남불’ 논쟁을 일으키며 국민들로 하여금 눈과 귀를 가릴 마스크를 절로 찾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의 강성 발언이 지지층 결집에 효과를 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더 강성으로 나오는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불러들일 명분도 없고 당분간 서로 퇴로를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이니 그저 국민은 정쟁의 부산물들인 ‘갈등과 혐오’의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시간 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빨갱이, 친일파 앞잡이’니 ‘태극기부대의 대변인’이니 하는 색깔론 프레임 논쟁과 미세먼지보다 더 켜켜이 쌓여만 가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말의 성찬’ 속에, 격변하는 외교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실패 논란과 청년실업률 증가 사태, 소득주도 성장 논쟁에 따른 사회갈등, 적극적 재정에 따른 퍼주기 논쟁, 한유총 사태, 선거법 개정 논란, 사법 농단 문제, 버닝썬 권력 유착 문제 등 구석구석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리며 먼지 속에 파묻힌 지 오래다.

70여 년 민주주의 역사를 써내려 오는 동안 우리는 온갖 대내외적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빼어난 국민성으로 자정기능을 발휘하며 맑은 공기를 공급하고 순환시켜 왔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그릇된 독선과 오만은 국민들의 본능적 균형 감각으로 번번이 정화되고 날아가게 만들었으며 결국은 미래를 향한 맑고 깨끗한 에너지로 승화시키며 전진해 왔다.

그러나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고 반성도 없이 대치하는 작금의 “적폐, 신적폐 논쟁” 이나 “국정농단, 신국정농단 세력”이라고 상호 비방하고 헐뜯는 자세는 공기정화기로 거르기도 어려운 초미세먼지를 넘어 잘 닦이지도 않는 ‘찌든 때’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국민 모두가 정보의 등가성을 누리고 자기결정력이 강해진 ‘모바일 미디어 극치’의 시대에 이념적 프레임을 기초로 한 낡은 이분법으로 국민을 강요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도 유분수다.

헌정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오점 발언과 갈등들로 정치권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서 국민들로 하여금 더욱 두터운 마스크를 쓰게 만들수록 맑고 깨끗한 공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도 배가되어감을 그들만 모르는 모양이다. 기어이 국민들 스스로 맑고 깨끗한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야만 정신을 차리려는가.

<서원대학교 교수 / 前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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