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넘으면 가입 어렵다?”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일요서울 | 최서율 기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생활형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당부된다. 최근에는 단순히 돈을 훔치는 행위에서 지위를 사칭하거나 특정한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등의 수법도 등장했다.

지능화된 범죄에 따른 피해자도 늘고 있다. 일요서울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 유형에 대해 알아보고 대응책도 함께 제시한다. 이번호는 노인 소외를 부추기를 렌털 시장에 대해 알아본다.

본사는 “모르는 일”, 중개 업체로 책임 떠넘겨…이상한 구조 빈축
공정위 “‘소비자정책위원회’를 통해 보완하겠다”…재발 방지 노력

일요서울은 지난 13일 한 렌털(리스보다 임대기간이 짧고 불특정 다수로 요금을 주고 임대하는 것) 업체에 정수기 대여를 문의했다. 각종 혜택을 친절하게 설명하던 상담원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할아버지 댁에 설치를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상담원은 “할아버지가 몇 살이신가요? 75세가 넘으면 가입이 안 됩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방안은 없냐고 물으니 명의를 바꿔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요즘은 대부분 명의를 바꿔 진행하는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유를 물어도
‘명의 변경’만 반복

경상북도 영천시에 사는 김모(77)씨는 매트리스 렌털 업체 문의를 했다가 “명의 변경을 하지 않으면 신청이 안 된다”는 황당한 답을 들었다. “노인이라고 혜택을 바란 것도 아니고 내 명의로 신청을 할 뿐인데 명의 변경을 하라는 요구만 이어졌다”며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매트리스 업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물 처리기 렌털 업체, 정수기 렌털 업체 등에 일요서울이 무작위로 문의를 한 결과 모두 ‘75세 이상은 가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오모(71)씨는 더한 대답을 들었다. “정수기 렌털을 하려고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상담원이 다짜고짜 생년월일을 묻더니 노인 명의로는 가입이 안 된다고 했다”며 “이유도 없이 안 된다는 게 속상해 분통이 터졌다”고 밝혔다.

정말로 이 같은 규정이 존재하는지 본사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의 렌털 본사는 가입 나이 제한이 없다고 했다. 한 기업만 지난해 6월까지 85세 이상 가입 제한 규정이 있었지만 그 규정은 올해 폐지되었다고 전했다. 본사 규정이 없는데 왜 “75세 이상은 가입할 수 없다”고 렌털 제품 중개 업체 상담원들이 주장한 걸까?

상당수 소비자는 본사를 통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본사를 대신해 고객을 모집해 주는 중개 업체를 거치게 된다. 이 중개 업체가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다.

렌털 제품을 제조·판매 하는 기업의 한 인사는 “카드사와 마찬가지로 고객을 모집하는 이들과 판매 위임 계약을 맺는다”며 “개인 사업자인 이들이 고객을 모집할 때 본사 방침과 달리 자체적으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사업자들과 판매 위임 계약을 맺을 때 자체적으로 나이 제한을 두는 규정을 막을 수는 없냐고 묻자 “위임을 한 것이기 때문에 본사 개입은…”이라고 대답을 미루었다.

업체 생태계? 기이할 수밖에……

중개 업체들은 고객 유치를 대가로 본사에서 수당을 받는다. 고객 유치를 위해 중개 업체들은 설치비, 가입비는 물론 기념품, 상품권 지원 등도 내걸며 홍보에 필사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회원을 모집한 중개 업체는 본사에서 주는 수당의 65~70%를 바로 받은 뒤 일정 기간(통상 1년) 회원이 유지되면 나머지를 받는다”며 “고령 고객이 사망하면 수당을 온전히 못 받을까 봐 노인 회원 가입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금융 문제도 엮여 있다. 중개 업체는 업체 간 고객 확보전을 펼치면서 치열한 사은품 경쟁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캐피털, 저축은행 등의 금융권과 손을 잡는다. 업체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중개 업체에 고령층 가입 제한을 요구한다. 본사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렌털 본사는 고령층이 중개 업체를 거치지 말고 본사에 직접 렌털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를 정확히 구분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기업 관계자는 “본사 방침과 달리 나이 제한을 둔 중개 업체들을 전부 단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2018년 제1차 소비자정책위원회 개최 당시 렌털 서비스업 광고 고시 사항과 계약 만료에 대한 사항을 이미 논의한 상태”라며 “다음 소비자정책위원회 때 렌털 서비스업 관련 사항을 더 보완하겠다”고 재발 방지 노력에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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