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맨해튼 부동산업계에서 살아남아 크게 성공했다. 선거 과정에서는 경쟁자가 쓴 선거비용보다 훨씬 적게 자금을 쓰고도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후에는 한국 등 동맹국들과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해 미국에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압박해서는 1천억 달러의 방위비를 토해내게 했다. 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건 죄다 챙기고 있는 중이다.

미국 주류 언론과 정적들, 자국 내 지식인들로부터도 천박하다느니, 충동적이라느니, 장사치에 불과한 ‘또라이’라는 경멸적 표현들을 듣고 있지만 그는 북한 지도자를 불러내 두 차례나 회담을 성사시킨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국내외적으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자화자찬(自畵自讚)할 만하지 않은가.

지난달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자 이른바 중재역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회담 실패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고 있다.

이는 트럼프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로 들린다.

지난 2017년 11월 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트럼프는 “북한은 당신(김정은)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다.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다”고 지적하고 “하지만 당신이 지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당신 정권의 공격성을 끝내고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며 안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를 함으로써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을 앞둔 올 2월에도 트럼프는 “김정은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로 인해 지쳐 있는 것 같다, 그는 북한을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 만들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지금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장과 회담 결렬 후에도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하면 북한은 경제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관한 한 일관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미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평창올림픽 전이나, 긴장이 완화된 후에도 같은 말을 했다. “비핵화를 하면”이라는 조건절이 항상 있었다.

반면 문정부와 김정은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비핵화에 대한 개념부터 미국과 결을 달리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듯한 인상을 트럼프에게 심어주었다.

특히 김정은은 ‘비핵화’는 곧 체제 포기와 직결되기에 핵무기는 계속 보유한 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으며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속셈을 하노이 회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같은 김정은의 속셈을 간파했고 하노이 회담에서 이를 재확인했을 터다.

결국 하노이 회담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최후통첩'을 한 자리였다.

트럼프는 아울러 하노이 회담을 통해 자신의 북핵 해결에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 문 정부에게도 경고의 시그널을 보냈다.

하노이 화담과 관련해 트럼프는 미국 협상안을 두고 문 정부와 사전에 상의하지도 않았고 사후에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예정됐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부산 방문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문 정부 ‘패싱’인 셈이다. 동맹국들이 서로 중요한 정보 교환을 하지 않는 희한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주요 외신들은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 관계를 ‘불화' ‘이견' ‘마찰' 등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예 ‘북한의 핵 제안을 긍정 평가한 문(文), 트럼프와 결별하나'라는 불길한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를 우려했다.

북한 핵 해결을 두고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문 정부와 미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이러다 한미 동맹마저 파국을 맞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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