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하라” 등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 대표에게 “계속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의장석으로 뛰어 올라가 문 의장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그들을 제지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나 대표는 고함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귀 닫는 자세, 이런 오만과 독선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결국 소란 속에 회의는 30여 분간 중단되었다.

청와대 한정우 부대변인은 연설 직후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며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 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국회 윤리위에 회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원수 모독죄”는 현행 형법에 없다.

나 대표의 “김정은 수석 대변인” 발언은 문재인 개인 인격에 대한 모독이 아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야당 시절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 ‘새해 소원은 명박 급사(急死)’ 등 인격적 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인 “귀태(鬼胎)”라고 지칭하기까지 했다. 저 같은 살기등등한 발언들은 국회의원으로서 정책상의 이견 표출과는 달리 인격적 모독에 해당한다.

그에 반해 나 대표는 문 대통령의 친북유화책을 비판하면서 이미 반년 전 외국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던 문구를 인용하는데 그쳤다. 나 대표는 “반미, 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가 우리 외교를 반미, 반일로 끌고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며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미·반일”로 기운 친북유화책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비치지 말도록 해달라는 당부였다.

문 대통령을 처음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지칭한 건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이었다. 작년 9월25일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먼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띄워주었다. 그리고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김졍은이 “우리의 바람과 요구에 화답했다.”면서 “이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라고 했다. 김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여기에 블룸버그 통신은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 됐다.”고 썼다. 나 대표는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더 이상 “김정은 수석대변인” 비난을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국내외 언론들은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메신저“ ”북한의 외무장관“ ”김정은 대리인“이라고 지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민주당은 “국가원수 모독” 운운하며 난리다. 나 대표가 작년 12월 원내대표로 취임하면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 훼손을 막기 위해 “독하게 싸우겠다”고 다짐한 그의 독한 입에 일찌감치 재갈을 물리려는 게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에 대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과잉 충성 표출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며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 정권은 “제왕적 권력”으로 기울며 “오만과 독선”으로 빠지고 있다. 나 대표에 대한 “대통령 모독” 질타와 “윤리위 회부” 요구에서도 드러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나 대표를 “국가원수 모독”으로 몰아 협박할 게 아니라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도록” 친북유화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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