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과 바꾼 그림 보유한 임상진 씨
독창적인 기법 완성 전인 1940년대 작품 추정

왼쪽 작품은 박수근의 1960년작 ‘마을’, 오른쪽 작품은 임상진 씨가 소유한 박수근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미공개 작품
왼쪽 작품은 박수근의 1960년작 ‘마을’, 오른쪽 작품은 임상진 씨가 소유한 박수근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미공개 작품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빨래터’ ‘기름장수’ ‘우물가(집)’ ‘절구질하는 여인’ ‘시장의 사람들’ ‘모자’ ‘귀로’ 모두 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작품이다. 박수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풍기는 서정성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작품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거나 삶 속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과거 그의 아들은 부친의 작품에 대해 500점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박수근의 작품은 경매시장에서도 고가에 거래된다. 작품성은 물론 희소성 때문이다. 과거 논란이 됐던 ‘빨래터’ 위작 논란도 그의 인기에서 비롯됐다. 

최근 박수근의 미공개 작품 소유를 주장한 사람이 등장했다. 수석골동품업을 하는 임상진 씨다. 임 씨와 박수근의 미공개 작품과 첫 만남은 지난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고에 처박아 뒀던 그림
지인 통해 박수근 알아

 

임상진 씨는 1990년 9월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호피석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임 씨는 근처 호피석 전문점 애석원에서 전시회에 내보낼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중년 남성이 임씨를 찾아왔다. 그는 애석원에 몇 번 들렀다며 청호피를 사겠다고 했다. 그가 선택한 청호피 작품은 당시 시세로 3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던지 그는 현금 20만 원과 당시 가지고 있던 농촌 풍경의 유화 그림 한 점과 바꾸자고 했다.

임 씨는 아무 생각 없이 손님의 조건에 응했고 청호피와 그림을 맞바꿨다. 당시 그 손님은 화가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임 씨는 한국의 농촌 풍경이라는 데 정감을 느껴 교환에 응했다. 그림은 그냥 창고에 처박아 뒀다.

이후 임 씨는 1993년 미국 LA에서 전시회를 하고 1994년 베트남을 방문하는 등 바쁘게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날 망치가 필요했던 임 씨는 창고에 들어갔다 그림을 보고는 새로운 감회가 들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들고 나와 방에다 걸었다.

며칠 후 수석 골동품업을 하는 한 지인이 집에 찾아왔다. 차를 마시던 지인이 그림을 보고는 박수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진품이 틀림없다. 위작은 여러 번 봤어도 진품은 처음 본다”라며 동양화 전문가를 찾아가 보자고 했다.

임 씨는 그림 감정을 받기 위해 소위 전문가들을 찾아 나선 게 당시가 처음이었다. 지인이 소개한 동양화점 관계자는 “박수근 그림으로 보기에는 색채가 좀 밝다. 박수근 그림은 물체의 식별이 바로 되지 않는다. 어둡고 검다. 갉아내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초기 그림이라...”라며 또다른 화랑을 소개했다.

새롭게 도착한 화랑 관계자는 그림을 유심히 살피지도 않고 “가짜다. 팔고 가라”며 임 씨가 가짜를 왜 사려고 하냐고 묻자 “연구에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답이 황당했던 임 씨는 그림을 팔지 않고 그냥 나왔다. 하지만 화랑 관계자는 입구까지 쫓아나오며 계속 팔라고 졸랐다. 이후 임 씨는 박수근 그림 공부에 매달렸다. 그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임 씨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은 박수근 작가의 1960년작 ‘마을’과 유사한 그림이다. 시골마을 풍경 속 초가집들과 물동이를 이고 있는 아낙네의 모습이 ‘마을’과 아주 흡사하다. 임 씨는 이 작품이 1940년대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수근 만의 독창적인 마티에르 기법을 완성하기 전이다. 

 

임상진 씨 소작 작품 속 박수근 사인
임상진 씨 소작 작품 속 박수근 사인

사인 감정 의뢰 후 확신
문화재 지정 신청

 

임상진 씨는 2010년 1월 20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의 사인에 대한 감정을 대한문서감정사회에 의뢰했다. 

대한문서감정사회는 현미경을 통한 영상, 디지털광학기기를 통한 필의 구성과 배자의 형태, 필습에 의한 직선적이고 곡선적인 필의 특성, 필의 순서와 조형미, 자음과 모음, 필의 각도, 운필 상태를 검사하고 필을 시작할 때의 기필 부분과 마지막 종필처리 부분, 숙련과 미숙련의 차이, 개인의 특성과 잠재 습성을 관찰했다.

그 결과 화집과의 사인 비교에서 일부 차이점도 있지만 ‘수’자의 ‘ㅅ’의 접합부와 종필 처리 부분, ‘근’자의 ‘ㄱ’ 시필 부분에 유사한 부분이 관찰되어 “상사(相似)한 필적으로 추정된다”고 감정했다. 

임 씨는 이와 함께 박수근 그림의 특징과 물감의 퇴색 상황 등을 바탕으로 진품임을 확신하고 2017년 3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에 문화재 지정 가능 여부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시로부터 지정불가 판정을 받았다.

지정불가 이유에 대해서는 “조사 대상은 박수근의 대표작으로 보기에는 선묘, 면처리, 색채, 구도의 완결성 등에서 부족하며, 박수근 그림의 전형적인 평면성, 원근법과 상이하다”라며 “특히 질감의 순도가 크게 부족하며, 전반적으로 박수근 작품이 지닌 전형적인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임 씨는 서울시의 지정불가 판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작품에 대한 지정불가 판정이 ‘가품 선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 심의와 관련해 진품·가품을 가리는 과정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작품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따지는 심의라는 얘기다.

임 씨 소유의 작품에 대한 심의에는 동산분과 문화재위원회 심의위원 10명이 참여했다. 심의 위원은 일반 감정사가 아닌 교수 등 학계 인사들로 구성됐다.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현대 미술의 경우 제작 기간이 짧은 만큼 지정·등록문화재 심의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했다. 덧붙여 해당 작가의 작품들이 문화재로 등록 숫자가 많으면 지정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법의 판단 선택
공개감정 받을 용의도

 

임상진 씨는 결국 법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임 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 2명을 고소했다. 그는 수사과정에 공개감정을 받을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갖고 있는 그림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정 받고 싶기 때문이다.

박수근 작품은 과거에도 진위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바로 ‘빨래터’다. 

빨래터는 지난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2000만 원이라는 한국 미술 사상 최고가로 낙찰됐지만,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이듬해 1월호에서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서울옥션이 지난해 1월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2년여 동안 법정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2009년 11월 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조원철)는 서울옥션이 미술잡지 아트레이드 편집주간 류모씨 등 2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작 의혹 제기가 언론의 활동범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작품의 원 소장자인)존 릭스가 1954년부터 1956년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박 화백의 그림 수 점을 받았다는 서울옥션의 주장은 사실로 판단된다”며 “안목감정과 과학감정 결과, 존 릭스가 받은 다른 그림과 함께 박수근 화백으로부터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실상 진품으로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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