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선거를 위한 정치 쇼인가

[이진우 기자] 우리금융지주(회장 이팔성) 민영화가 금융권을 포함해 정치권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금융지주에 12조8000억여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후, 2005년부터 진행한 민영화작업이 지지부진하던 터였다. 매각과 관련, 금융권에서는 당초 관심을 보였던 금융지주사들은 한 군데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티스톤파트너스(회장 민유성)를 비롯해 보고인베스트먼트(대표 변양호), MBK파트너스(대표 김병주) 등 사모펀드(PEF) 세 곳이 참여해 예비 입찰을 준비 중이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만 참여한 이번 입찰이 지난해처럼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우리금융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국민 공모주 방식의 지분 매각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 논란의 씨앗을 키웠다. 홍 대표의 제안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흘러나온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홍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권 말의 특혜 매각 시비와 ‘권력형 게이트’를 막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낸 우리금융지주와 대우조선해양은 국민공모주 방식으로 매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재집권을 위해서라도 이들 기업의 주식을 다수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날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와 만난 자리에서 “이미 상장된 회사의 주식을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가 생길 수 있고 공적자금 최대 회수라는 대원칙에도 맞지 않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선 국민주 매각은 현 시가보다 할인해 공모해야 하는데, ‘할인가’로 공모한 주식물량이 시장에 대거 쏟아지면 주가가 떨어질 수 있어 기존 주주들에게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 또 공모 할인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의 주식매각 시 ‘세금을 최대한 회수한다’는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이에 앞선 지난달 14일 홍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국민주 매각을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자 네이버 주식토론방에서는 소액주주들의 격한 댓글이 수백여 개 올라와 “정치권이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금융 등의 국민주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기존 소액주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국민주 논란’ 직후 우리금융 주가는 14일 1만3750원(이하 종가 기준)에서 26일 1만4300원으로 올랐으나, 대우조선해양 주가는 14일 4만1900원에서 26일에는 3만9450원까지 떨어졌다.

증권가에선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하락한 것은 ‘국민주 논란’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직접적인 영향은 같은 업종인 현대중공업의 2분기 실적 악화로 업계 전반의 실적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우리금융은 주가가 워낙 저평가돼 더 이상 내려갈 여지가 많지 않다고 내다봤다.


우리금융 인수, PEF가 대안?

우리금융 입찰에 참여한 사모펀드 3곳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우리금융의 장기적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주와 사모펀드 매각 방식을 제외하고 원점에서 제3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입찰에 참여한 3개 PEF가 부산·대구 등 지방은행을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이고, 여기에 미국과 중국 등 해외 자본을 잇달아 유치하면서 실제 인수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PEF로의 매각은 정부가 세운 민영화의 3대 원칙 중 빠른 민영화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는 충족한다. 그러나 금융산업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국민들은 론스타·뉴브리지 등 투기자본의 전횡을 맛본 터라 PEF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팽배하다.

더욱이 국책연구기관인 금융연구원은 지난달 26일 PEF의 우리금융 인수를 놓고 토론회를 열어 논란이 됐다.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당국의 개입이 있지 않았겠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PEF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미 새마을금고는 MBK와 제휴했다. 또한, 우리금융 계열의 경남은행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산은행과 대구은행도 PEF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해외투자가들의 관심도 눈길을 끈다. 특히 민 회장은 당초 인수자금의 30% 가량을 해외에서 조달하겠다고 밝혔으며, 중국ㆍ미국 등 해외투자가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민 회장이 같은날 우리금융 인수 관련해 중국 금융회사와 PEF 투자에 대해 협의했다고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PEF로의 매각이 부담이 되고 있지만, 이미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딜이어서 아무런 명분 없이 무산시키기도 어렵게 됐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우리금융 매각절차가 진행 중이니 좀 더 두고 보자"며 “국민주 방식과 관련해 홍 대표와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오는 17일 예비입찰 마감을 앞둔 매각절차를 강행할 것으로 보여진다. 또 다른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도 “국민적 우려를 고려해 까다로운 입찰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PEF가 모두 충족시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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