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인 독일어 교사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칠판에 무언가를 쓴다.
 
der des dem den
die der der die
das des dem das
die der den die
 
이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두 번 소리 내 따라하라고 한 뒤 다짜고짜 외우라고 한다.
 
필자를 비롯한 급우 모두는 교사의 말을 그냥 흘려보낸다.
 
다음 독일어 시간. 그 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씩 테스트한다. 외웠는지 안 외웠는지를. 결과는 뻔하다. 외운 학생은 아무도 없다. 화가 치밀어 오른 교사는 모두를 책상 위에 꿇어앉으라고 한 뒤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회초리로 학생들 넓적다리를 사정없이 후려패기 시작한다. 단말마와 같은 비명소리가 교실을 진동한다.

교사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반드시 외우라고.

우리는 밤을 새워 외운다. 이유는 단 하나. 맞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게 외운 덕분에 저 정관사들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잘 외울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쓰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영어 시간도 다를 바 없다.
 
I my me mine
you your you yours
he his him his
she her her hers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외우란다. 외우지 않는 대가는 회초리 체벌이다.
 
필자를 비롯한 ‘구세대’는 학교에서 이렇게 교육받았다. 이른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었다.
 
당시에는 암기만 잘 하면 시험에서 100점 받을 수 있었고, 암기만 잘 하면 졸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누가 누가 잘 암기하나’ 교육이었던 셈이다.  

'듣보잡' 연동형비례대표제 내용을 묻는 기자에게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심 위원장 역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희생자일 수 있다. 그런 교육을 받았으니 “국민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찍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기독교는 중세 시대 세계를 지배했던 종교였다. 그러나 당시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지 못했다. 아니, 읽을 수 없었다. 어려운 라틴어로 쓰여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당시 성직자들이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왜 그랬을까?
 
성직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를 원했고,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시끄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틴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를 두려워했다. 발각되면 화형으로 단죄했다.

성직자들은 성경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자기들이 하는 말에 따르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일반 성도들을 세뇌했던 것이다.

심 위원장도 혹시 중세 성직자와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른바 ‘일타 강사’라고 불리는 유명 강사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사실 이들의 실력은 일반 전공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에게는 ‘탁월한 전달력’이라는 무기가 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심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내용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혼자만 알고 이를 제대로 학생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따라지 과외선생’과 다를 바 없다. 
  
어디 심 위원장만 그럴까.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자(者)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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