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바른미래당 내 친유승민계가 수도권에 둥지를 트려는 모양새다. 친유계는 자유한국당과의 보수 적자 경쟁에서 ‘완패’했다. ‘보수의 심장’ TK에서는 이미 배신자 낙인이 찍힌 지 오래다. 황교안 號의 출범으로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 명분은 사라졌다. 이에 친유계가 ‘정통 보수세’가 강한 영남권은 포기하고 중도 보수층이 두터운 수도권으로 지지기반을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된다.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처리를 놓고 친유계가 급제동을 건 것도 수도권 중도 보수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초석 다지기’라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보수 대통합의 불씨가 살아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복당 명분을 잃고 ‘울며 겨자 먹기로’ 둥지를 이동하는 친유계에 선거법 개정은 또 다른 복당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 겸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유승민 의원(가운데)이 지상욱, 유의동 의원과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국회 본청으로 들어오고 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 겸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유승민 의원(가운데)이 지상욱, 유의동 의원과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국회 본청으로 들어오고 있다.

- 보수 적자 경쟁 ‘참패’→TK 배신자 ‘낙인’→정치 실험 ‘실패’...이번엔 수도권?
- 선거법 패스트트랙, 야권發 정계개편 불씨 되나... ‘러브콜’ 보내는 나경원


유승민 의원의 탈당설이 주춤해지자 당내 일각에서 내년 총선 수도권 차출론이 제기되고 있다. 유력 대권 주자이자 당내 핵심자산으로 꼽히는 유 의원이 총선을 통해 수도권에 정치적 디딤돌을 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연히 친유승민계 의원들도 수도권 지지기반 다지기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복당 명분 사라져...
“TK 아닌 수도권 승부”

이 같은 기류는 당 소속 의원 전원이 모여 당의 향방을 논의했던 바른미래당 창당 1주년 연찬회부터 짙어지기 시작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은 지난달 12일 연찬회 결과와 관련해 “젊은 20~30대 층과 수도권 중심의 정당으로 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일부의 생각들이 공유가 된 그런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출신 한 의원도 지난달 22일 “유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단할 수 없지만 수도권에서 승부를 펼쳤으면 생각한다”며 “그가 대권 후보로 ‘개혁보수’를 강조하는 만큼 TK(대구·경북)를 벗어나 수도권과 2030 젊은 세대의 높은 인지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유승민계의 이 같은 둥지 이동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유 의원은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개혁 보수’를 자처하며 호기롭게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대선 정국에서 유 의원은 ‘굴욕’을 면치 못했다. ‘보수의 심장’ TK를 방문했다 물벼락을 맞는 등 ‘배신자’ 낙인은 짙어져만 갔고 자연히 대선에서도 참패했다.

이후에도 유 의원은 안철수 전 대표와 통합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는 등 ‘정치 실험’을 이어갔지만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특히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유 의원의 자유한국당 복당 가능성이 제기됐다. 같은 시기 유 의원 스스로도 보수 색이 짙은 발언을 이어가며 가능성은 커져갔다. 유 의원뿐만 아니라 일부 친유계 의원들이 한국당 입당을 희망한다는 사실은 지난해 12월 18일 복당 한 이학재 의원의 입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 의원은 이날 입당 기자회견에서 “보수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만약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당선됐다면 유 의원을 비롯한 친유계 인사들의 복당은 현실화됐을 공산이 높다.

그러나 내년 총선 공천권 일체를 쥔 자유한국당 신임 당대표엔 황교안 전 총리가 당선됐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음을 전대 과정에서 공공연히 밝혔다. 유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유 의원 및 친유계로선 복당 명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셈이다.

친안계·친유계 ‘일촉즉발’
당내 주도권 싸움 ‘활활’

이에 바른미래당으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친유계 의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총선 전 수도권으로 지지기반을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일환으로 정치권에서는 유승민 의원의 ‘종로 차출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권 주자인 유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정치 1번지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만이 위기의 친유계를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묘안이라는 것이다.

친유계가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처리를 놓고 당 지도부에 이견을 표출한 것도 수도권 안착을 위한 당내 친안계와의 주도권 다툼으로 읽힌다. 이미 바른정당계 안에서는 김 원내대표의 사과를 넘어 사퇴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는 사실상 친안계가 당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친유계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여야 4당 논의 중 당이 애초 주장해 온 100%가 아닌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합의되며 불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호남에 기반을 둔 의원들은 이번 개편안도 기대를 걸 수 있지만, 바른정당계로는 목을 내놓으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며 “이에 당장 나서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두 진영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도 당장 탈당, 분당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현재로는 우세하다. 황 평론가는 “지금 갈라지면 교섭단체만 깨질 뿐, 서로가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총선 6개월 전 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결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같은 바른미래당의 내홍은 자유한국당엔 ‘절호의 기회’다. 한국당에선 바른미래당 내 친유계 인사들과 개별 접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한국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시점에서 보수결집으로 세를 불리기 위한 정계개편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선거법 저지 공조가 친유계에 새로운 복당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바른미래당에 박수를 보내자는 수준의 호소에 머무르던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수위도 취임 100일을 맞은 20일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점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선거대책회의에서 “지난 대선 결과 우파 야권은 분열됐고 일부 야당은 여당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여서 늘 문재인 정권을 견제·감시하는데 힘이 부족했다”며 “정권 중심으로 뭉친 여당과 동상이몽, 사분오열하고 있는 야당이 대립하는 구도를 끝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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