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왕을 비판하는 소리가 뚝 끊겼다. 그것은 단지 입을 막은 것에 불과하다. 백성의 입을 막는 건 강물을 막는 것 보다 위험하다. 큰 둑도 개미구멍으로 인하여 무너진다(堤潰蟻穴·제궤의혈).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여론이 소통되게 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비판을 수용해야 비로소 왕자(王者)의 정치가 이루어진다.”

위의 말은 필자가 한 말이 아니다. 고대 중국 주(周) 나라 충신 소공(召公)이 려왕(厲王)에게 한 간언이다. 물론 왕과 대통령, 백성과 국민, 왕자(王者)와 민주주의를 대체해야지만.

국인(國人)은 중국 고대 주나라 경(卿), 대부(大夫) 등의 사족(士族)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나라 10대 려왕은 소공의 간언을 듣지 않고, 감시와 형벌을 강화하며 왕을 비방하는 자를 죽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길에서 만나면 눈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道路以目·도로이목). 나라에는 감히 정치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마침내 백성들과 국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려왕은 도읍인 호경(鎬京, 장안)에서 체(彘, 산서성 곽현)로 달아났다. 이 사건을 ‘국인폭동(國人暴動)’이라고 하며, 이와 같은 나쁜 본보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한다. 국인폭동 이후 주 왕실은 급속히 쇠락해졌다. 이때부터 왕은 없고 소목공(召穆公)과 주정공(周定公) 두 재상이 나라를 14년간 다스렸다. 사가들은 이때를 ‘공화(共和)시대’라고 한다. 이는 동양의 공화정 효시라 할 수 있다.

진시황(秦始皇)은 학자들의 정치 비판을 막기 위해 진나라 책(법가의 서적)이 아닌 것은 모두 불태우고 유생(儒生)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焚書坑儒·분서갱유). 또한 두 사람 이상이 만나 감히 ‘시(詩)’나 ‘서(書)’를 거론하면 저잣거리에서 사형시켰다(偶語棄市·우어기시). 진시황은 엄격한 사상통제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유의 획일화를 꾀했지만 진나라는 결국 15년 만에 멸망했다.

최근 집권 여당 내부에서 고대 왕조시대에도 없었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동이 빈발하는 것은 퇴행적이다. 과연 이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외쳐온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난 3월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논평을 통해 기사를 쓴 미국 블룸버그 통신 기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 등의 거친 주장을 했다. 마침내 세계 100여 곳 언론사 소속 기자 500여명으로 구성돼 있는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이 지난 3월16일 성명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기사와 관련된 의문이나 불만은 언론사에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제기해야 하고 결코 한 개인을 공개적으로 겨냥해서는 안 된다. 기자 개인의 신변에 위협이 된다.”며 해당 논평을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언론의 기본적 기능은 권력 비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성역(聖域)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여당이 법에도 없는 ‘국가원수 모욕’ 운운하며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비호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블룸버그 통신 기사의 표현은 많은 국내외 언론에서 나온 바 있다. 게재된 지 6개월이나 지난 기사를 그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인용하자 문제 삼는 것은 야당을 압살하는 좌파독재다. 집권세력의 위험한 언론 및 야당관(觀)이 도를 넘고 있다. 이미 5·18 비판 처벌법, 가짜뉴스 처벌법 등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을 ‘사기꾼’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언론과 야당은 민주주의의 양대 보루다. 존 밀턴은 언론 자유의 경전인 ‘아레오파기티카’에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썼다. 미국의 올리버 홈즈 판사는 “누군가 말을 하거나 글로 쓴 것이 사회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주지 않는 한 자유로운 말 또는 언론은 보호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 정권이 언론과 야당에게 재갈을 물리는 좌파독재가 지나치면 ‘촛불폭동’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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