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보험·현금 무단 인출 ‘줄줄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농아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 900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50대 남성 A(58)씨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뉴시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농아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 900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50대 남성 A(58)씨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자신과 같은 처지의 농아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 900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50대 남성 A(58)씨에 대한 제보가 일요서울에 접수됐다. 피해자 B(67)씨는 당초 A씨가 자신에게 코인을 이용해 사기를 저질렀다며 그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지난해 말 검찰이 A씨에게 혐의 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리면서 기소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조사 과정에서 A씨가 B씨에게 저지른 또 다른 사기 행각이 적발되면서 ‘2라운드’에 돌입했다.


사기 행각 잇따라 발각…1심 ‘코인 사기’ 단초
       

이 사건의 제보를 받은 일요서울은 지난 20일 해당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수서경찰서에서 제보자인 B(67)씨와 그의 조력자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B씨에 따르면 A(58)씨와 B씨는 모두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농아인으로, 두 사람은 지난 2015년경 농아인협회를 통해 안면을 익히게 됐다.

당시 B씨는 고향에서 서울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B씨의 경우 농아자일 뿐만 아니라 지적 수준이 약 6~7세 정도에 불과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쓰기의 경우 자신의 이름 외에는 적을 수 없으며, 문자 해독 능력도 거의 지니지 못한 상태다.

또 그는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와 농아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못해 일반 농아자보다 수화를 이용한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A씨는 B씨에게 ‘지내는 데 도움을 주겠다’며 그에게 접근했다.

B씨의 조력자들에 의하면 당초 A씨는 B씨와 함께 밥을 먹거나 그의 생활을 보조하는 등 옆에서 그를 살뜰히 도왔다. 이 가운데 B씨가 A씨에게 은행 업무 등을 부탁하면서 당시 그의 통장에 9000만 원 상당의 자금이 있는 것을 보고 이 같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사기 행각 ‘들통’
교묘히 2500만 원 빼돌려


지난 2015년 A씨는 B씨를 꼬드겨 암호화폐인 ‘리플코인’에 투자를 권유했다. 이에 B씨는 ‘리플코인’ 계정에 가입해 15만5800코인을 지급 받았다. 이후 지난해 4월 B씨가 해당 계정에 접속하려 하자 비밀번호가 변경돼 있었다.

주변 도움을 받아 계정에 접속하게 된 B씨는 자신의 코인계좌에서 같은 해 1월 알 수 없는 계정으로 15만5700코인이 이체됐고, 그 가운데 15만5600코인이 그해 3월 또 다른 계정으로 이체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리플코인 가격이 개당 2000원에 거래됐음을 고려했을 때 15만5600코인은 약 3억 원의 가치에 해당한다. 

당시 B씨의 계좌 설립을 도운 C씨 등의 조력으로 이 같은 범죄 행위가 A씨가 저지른 사실임이 드러났다. A씨가 이 같은 사실을 시인하자 B씨와 C씨 등은 그에게 코인 환급을 요구하였으나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들은 지난해 5월 서울 중랑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씨 측에 따르면 이 사건은 수서경찰서로 이관돼 수사가 진행됐으나 당시 조사 과정에서 B씨가 혼자서 조사에 임하는 등 그의 특수한 상황이 감안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A씨가 무단 이체를 했다’는 B씨의 주장보다 ‘B씨가 나에게 리플코인 관리를 위탁했다’는 A씨의 주장이 우세하게 받아들여지면서 검찰은 그에게 지난해 10월 ‘혐의 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후에 밝혀졌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을 인지한 C씨 등 주변 지인들은 B씨의 통장내역을 살펴봤다. 그 결과, 9000만 원에 달했던 잔고가 1년 새 ‘0원’이 돼있었다.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니 A씨가 B씨의 통장에서 돈을 무단 인출·이체한 것과 B씨의 명의로 5개에 달하는 상조보험을 가입하도록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B씨는 2500여만 원 규모의 재산 피해를 입게 됐다. 이에 B씨 측은 A씨와 범행에 연루된 두 명에 대해 지난해 11월 다시 고소를 제기한 상태다.

A씨는 ▲정보통신망 침입죄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 ▲금융실명법 위반죄 ▲사기죄 ▲사문서위조죄 및 동행사죄 ▲사서명위조죄 및 동행사죄 ▲절도죄 등의 혐의를 갖는다. 이와 더불어 범행에 연루된 홍콩 국적의 D씨는 ▲정보통신망 침입죄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를, A씨의 처조카인 E씨는 ▲금융실명법 위반죄의 혐의를 지닌다.


“카드 빌려 달라” 무단이체·인출
“큰돈 돌려줄게” 보험 위조 가입


A씨는 B씨가 일반인에 비해 다소 저하된 지적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지닌 사실을 인지하고 B씨에게 ‘체크카드’를 건네받아 악용한 것이다. 그는 B씨에게 체크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잠시 다녀올 테니 카드를 빌려 달라’고 말해 건네받는 수법 등으로 총 10차례에 걸쳐 882만 원의 돈을 무단 인출했다. 아울러 E씨의 계좌를 도용해 그의 계좌로 총 6차례에 걸쳐 1558만1900원을 B씨의 동의 없이 이체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계좌로 120만1600원을 보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5년 당시 한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B씨를 ‘납부가 완료되면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다’며 회유해 그 회사의 상조보험 5개를 가입하도록 했다. 납부 금액은 한 계좌당 3만5000원이었다. 
이를 더하면 B씨는 매달 17만5000원의 금액을 지불한 것이다. 이 같은 금액을 140개월 동안 납부한 B씨는 2450만 원(한 계좌당 490만 원씩)의 재산을 잃게 됐다.

반면 통상 보험사가 보험설계사가 신규 계약을 체결할 때 월납 보험료의 500%가량을 기본수수료로 지급하고, 200% 안팎의 성과금을 지급함을 참고한다면, A씨는 B씨의 보험가입을 통해 17만5000원의 500%(기본수수료)인 87만5000원과 200%(성과금)인 35만 원을 얻게 된다. 즉, 약122만5000원의 부당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B씨 측에 따르면 그가 가입한 5개의 보험 가운데 1개는 A씨가 그의 서명을 위조해 위조된 계약서를 작성해 가입시키도록 했다.   

B씨의 변호를 맡은 유재원 메이데이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이 사건의 본질은 지적 능력이 부족한 농아인을 그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진 다른 농아인이 지속적으로 속이고 착취해 온 것”이라며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채 B씨의 조력자들을 배제하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B씨의 경우, 수사기관이 수사과정에 관련된 사실관계를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조력자의 도움을 배제해선 안 된다”면서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사건 해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A씨는 사업 관계로 일본과 홍콩 등 해외와 국내를 오고가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 국내에 소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아직 경찰 조사에 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형법 11조는 “농아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했다. 이들의 지적 능력이 일반인과 변별된다는 취지다. 이 조항은 지난 2017년 농아인으로 구성된 ‘행복팀’ 사기 사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유 변호사는 “농아자 사이 벌어진 사기사건 등에서 처벌을 방해하는 핵심 요소”라며 “농아자도 독립된 성인 개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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