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국가에 봄이 오려면 독재자가 무너져야 된다. 역사가 그걸 증명해 주는 바다.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65년부터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철권 통치하다 1989년 12월 정권의 몰락과 함께 총살됐다.

그는 ‘어버이 수령’ 또는 ‘민족의 태양’으로 북한 주민을 세뇌한 북한 김일성의 독재 방식을 루마니아 국민에게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또 아내를 비롯한 직계 일가족과 처가 식구들까지 불러들여 행정부 요직에 앉히는 족벌 정치를 이어왔다.

불만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도청을 서슴지 않는 등 국민들의 행동과 나누는 말 하나하나까지를 통제했다. 루마니아는 한때 풍족한 농업 국가였으나 현실을 무시한 차우셰스쿠의 무리한 공업화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러 1980년대에는 무려 111억 달러의 부채를 안아야 했다.

이에 루마니아 국민들이 들고 있어나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시가전 양상으로 번져나갔다. 위협을 느낀 차우세스쿠는 도주했으나 혁명군대에 잡혀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160여 발의 총탄 시례를 받으며 비참하게 처형됐다.

또 한 사람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1969년 리비아 육군 중위로 복무 중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의 국가원수 겸 국가평의회 의장 겸 총리 겸 국방장관에 올랐다. 그는 ‘인민 직접민주주의'라는 독특한 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의회제와 헌법을 폐하는 등 전제 독재 권력을 강화해 자신을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의 위대한 9월 사회주의 인민 혁명의 수호자' ‘혁명의 지도자이자 수호자'라 칭하며 민족주의, 반미주의 독재정치를 폈다.

그러나 2011년 2월 카다피 정권에 대항한 반정부 시위가 지축을 흔들었다. 결국 그는 10월 20일 트리폴리에 진입한 자유 리비아군에 의해 고향 시르테에서 사살됐다.

작년 이맘때 평양에서는 ‘봄이 온다’라는 타이틀로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의 평화를 기원하는 우리 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평양 동평양 대극장에서 열린 예술단의 공연에는 북한의 김정은·리설주 부부가 참석하는 등 성황리에 끝났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남북이 서로 총칼을 겨누면서 날카롭게 대치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의 봄이 오는 줄 알았다.

그랬는데 그 ‘봄이 온다’는 공연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결렬됐고, 영변 동창리 핵시설은 재가동됐다. 지난 1년 간 평화무드 속에 북한은 6개의 핵폭탄을 추가로 만들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거짓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응원단은 예천에서 열린 양궁경기 응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버스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빗속에 방치돼 있다며 통곡했다.

김정은 집단은 수틀리면 정적을 고사포로 날려 버리고, 눈에 거슬리면 이복형도 남의 손을 빌려 살해해 버린다. 유일사상, 적화통일, 핵, 이 세 가지는 굶어죽는 일이 있어도 포기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약속은 선의다” “그들은 반드시 핵을 없앨 것이다”고 공언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고 항변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문 정부 들어 삐걱대던 한·미동맹은 이제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일 관계는 수습이 곤란할 정도로 악화일로를 내닫고, 중국으로부터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갈라파고스(세상과 단절된 외딴 섬)’ 외교를 자초해 우리 편이 없다는 말이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사면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싸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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