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미·북 중재를 놓고 미국의 불신 대상이 되었으며 일본과는 과거사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결되어 있다. 중국과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이은 중국 군용기들의 계속된 우리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 등으로 긴장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나설 때 연이어 외교적 결례를 범한다. 여기에 우리 외교부의 보다 슬기로운 외교력 발휘가 절실하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문 대통령 코드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강 장관은 국회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장관 후보자로서 문 대통령 코드 맞추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개인 승용차를 타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인권 문제의 기본은 피해자가 중심이 되고, 그 뒤에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며 “장관이 되면...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일본과 채택한 위안부 합의문이 “피해자 중심”이 되지 않았으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코드에 맞춘 발언으로 들렸다.

강 장관은 작년 10월3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목록 신고를 뒤로 미루고 먼저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기를 맞교환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즉각 미·북협상 목표가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맞교환이 아니며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이라고 반박했다. 강 장관의 섣부른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기 맞교환 주장도 종전선언에 집착한 문 대통령 의중을 헤아린 발언으로 간주된다.

또 강 장관은 지난해 10월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집권 여당 의원이 “5.24 제재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관계부처와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5.24 해제를 반대하는 야당과 국민의 거센 반발은 물론 미국에도 충격을 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 장관 발언을 간접으로 반박했다. 여기에 여권 일각에서 조차도 강 장관이 신중치 못한 말로 “강경화 리스크(위험)”를 빚어내 국정운영에 부담을 준다고 불평했다. ‘강경화 리스크’는 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코드를 맞추려는 데서 자초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밖에도 강 장관은 미·북 2차정상회담이 결렬되자 “회담 결과를 놓고 우려나 회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핵화 조치와 제재 문제를 논의하고 대화 의지도 재확인하는 등 의미가 있었다.”는 취지로 발언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긍정적 평가 또한 3일 전 문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을 “큰 진전”으로 평가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강 장관의 의도적인 대북 유화책 발언들은 청와대측과 사전 교감에 따른 것이었는지 모른다. 청와대가 여성 장관의 부드러운 언어로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맞교환’ ‘5.24 해제’ 등 대북 유화책을 발설케 함으로써 국민의 거부감과 반발을 피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는지 추측케 한다. 아니면 강경화의 개인적 소신일 수도 있다.

물론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책이다. 그렇다고 장관 직위가 ‘강경화 리스크’를 유발할 정도로 대통령의 코드나 맞추라는 자리는 아니다. 대통령 코드를 무리하게 맞추면 “아부” 또는 “과잉 충성”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때로는 전문가로서 대통령의 정책을 소신 있게 수정 보완하는 결기(決起)도 보여야 한다. 강 장관은 대통령 코드에 열심히 맞춘 덕분으로 3월 8일 개각에서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감투로는 우리 외교가 지금 당면한 난제들을 풀어 갈 수 없지 않겠나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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