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놀이터가 된 석촌호수, “역사와 시민에게 돌려달라”

송파 삼전도비

서울시·송파구, ‘송파나루 복원’ 결단해야

석촌호수가 위치한 송파구의 송파(松坡)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고 해서 송파라 불렸다. 송파지역은 한강연안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선사시대부터 신석기인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고대국가성립과 함께 고조선의 생활무대다. 석촌호수는 송파나루터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에도 송파나루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송파나루터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서울과 전국을 잇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


한강 물류 중심지, 송파나루

잠실은 조선왕조 초기 세종 때 왕명으로 지금의 잠실지역에 뽕나무를 심고 동잠실이라 불리웠다. 지금의 석촌호수에 있던 송파나룻터는 고려와 조선왕조에 이르는 1000년 동안 한성, 충청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상업의 교통로였으며, 송파장은 전국 각 지방의 산물이 집산되는 중심지로 5일장이 아닌 상설점포가 일찍부터 형성되었으며, 조선시대 15대 장터 중의 하나였다.

이곳은 서울과 경기도 광주(廣州)를 잇는 중요한 나루터로 땔나무와 담배 등을 서울에 공급하였다. 송파는 나루터보다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컸다. 조선 시대에 이곳에는 270여호의 객주집이 있어 전국의 10대 상설 시장 중의 하나로 번성하였다.

이는 서울 주변의 일반 상인들이 시전상인(市廛商人)들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피하기 위하여 삼남 지방이나 관동 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을 이곳에서 미리 사들여 도가상업(都家商業)의 근거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이 융성하여 이탈리아의 문화예술이 흥했듯, 송파나루의 번성은 문화의 융성을 가져왔다. 7마당 9거리로 구성된 ‘송파산대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는 200여년 전 이곳 시장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석촌호수 인근의 가락동 시장은 옛날 송파 시장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송파의 시장 기능은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와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쇠퇴일로를 걷는다. 나루터의 기능은 1960년대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항되어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 강남 지역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샛강의 매립과 교량의 건설로 나루터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석촌호수가 있는 곳은 본래 송파나루터가 있었던 한강의 본류였다.

한강이 홍수 때마다 유로를 변경하면서 자연제방이 침식되고 유로가 변경되면서 커다란 모래섬이 강 가운데 생겼다. 이 섬을 부리도(浮里島)라 하였는데, 1971년 4월 부리도의 북쪽 물길을 넓히고, 남쪽 물길을 폐쇄함으로써 섬을 육지화하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때 폐쇄한 남쪽 물길이 바로 현재의 석촌호수다. 방치되어 악취가 나던 석촌호수는 1980년대 초 호수공원으로 정비되었다.


국운의 전환점

송파는 국운의 전환점이었다. 송파는 2000년 전 고대국가 백제의 땅으로 서울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또한 384년(침류왕 1)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진(晉)나라를 거쳐 송파에서 백제에 최초로 불법(佛法)을 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송파지역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부터 21대 개로왕까지 약 493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곳으로, 한성백제(BC 18~475)는 백제가 한강유역에 도읍한 시기로 송파지역에서 고대국가로의 기틀을 갖추고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의 전기시대이다. 그 흔적으로 송파 일대에는 수많은 백제고분과 고성이 흩어져있다. 근초고왕 고분으로 추정되는 고분과 몽촌토성이 대표적이다. 몽촌토성은 이웃한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 초기의 왕도(王都)를 구성하는 성터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송파는 예부터 전쟁터로 돌변한 적이 많았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신라, 고구려가 이 땅을 놓고 싸웠다. 한때 백제의 도읍이 있던 땅이었지만 결국 송파를 차지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뤘다.

병자호란은 국운의 쇠퇴기였다. 삼전도의 굴욕이 그것이다. 굴욕의 상징이 된 대청황제공덕비가 지금도 석촌호수 한편에 세워져있다. 이 비석은 치욕의 상징이지만 문화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한문과 몽골, 만주글자가 동시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땅에 넘어진 자는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한다. 대굴욕을 당한 터에서 대한민국은 일어났다. 잠실에서 86 아시아경기대회와 88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렸다. 청에게 굴욕당한 송파에서 당당히 세계인의 대축제인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낸 것이다.

88올림픽은 남북한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남한에 뒤지기 시작했던 북한 경제를 그나마 버티게 했던 기본 동력은 물물교환이 가능한 사회주의 시장이었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시장이 붕괴될 무렵인 1989년 북한은 서울의 88올림픽에 도전한다며 평양에서 세계 13차 청년학생 축전을 벌였다. 이렇게 중국 같은 큰 나라도 기피하는 이 세계축제를 신격화 선전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서 이미 사회주의 시장을 잃어버린 북한 폐쇄 경제의 마지막 원천을 완전히 고갈시키게 되었다.

석촌호수에 위치한 대청황제공덕비는 우리 민족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상 청태조 누르하치는 중국인이 아니라 원래 신라자손인 경주 김씨의 먼 후손이다. 누르하치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늘 신라를 생각하고 사랑한다)였다. 그가 최초로 세운 후금(後金) 역시 경주 김(金)씨의 나라인 ‘신라’를 잇는다는 의미다.

삼전도의 굴욕 후, 청태조는 신라의 땅이었던 송파를 발판삼아 중국을 통일한다. 대청황제공덕비는 우리에게 굴욕을 준 비석이지만 이를 넘어 신라인의 한을 풀고 신라인의 황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누르하치의 야망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과거 270여개의 전국 최대 규모의 객주가 있었던 부자 동네 송파는 그 전통을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 잇고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더 뻗어나가진 못하고 있다. 현재 한 재벌의 놀이터처럼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 부흥의 걸림돌, 제2롯데월드

지난 6월 4일 서울 잠실동에 제2롯데월드가 착공했다. 오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는 롯데수퍼타워는 555m 높이에 지상 123층으로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된다. 그러나 작년 G20정상회담 기간에 맞추어 전격적으로 최종 승인된 제2롯데월드는 착공 후에도 여전히 반대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승인 직후 야당은 일제히 비난 성명을 내며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뿐 아니라 군내부에서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군사전문가인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은 “정부가 특정재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국가안보를 허물어버렸다”고 비판하며 “군사적 요충지인 성남공항 폐쇄로 가는 길”이라고 개탄했다. 결사반대했던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됐고 군은 국가안보의 책무와 자존심을 내팽개친 채 '허가'를 위해 묘안을 짜 내야했다.

오 방송국 인터뷰에서 김 소장은 또 “제2롯데월드 최종승인을 재벌사회의 로비 때문으로 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공군이 그동안 수차례 반대했고, (당시 김은기) 총장이 (제2롯데월드 건축을) 반대해 결국 옷을 벗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어 김 소장은 “소위 보수세력, 특히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정부가 국가안보를 엉망으로 했다고 욕해왔는데 사실 이런 결과를 보게 되면 누가 국가안보를 위하는 건지 헛갈린다”며 씁쓸한 농담을 했다.

성남시와 시민단체들은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현행 45m인 고도제한을 영장산 기준인 193m 이하로 완화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관내 26개의 재개발지역이 있는데 현행 45m로는 아파트 13층 정도밖에 지을 수 없어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근본적으로 시가지를 정비할 시점인데 대기업 민원은 들어주면서 성남 시민의 민원은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최근 롯데그룹(회장 신동빈)은 잠실 롯데월드 신축과 동대문 굿모닝시티 일괄임대 사업을 추진하면서 잇달아 지역 상인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송파주민들도 교통난과 지역 군소상권을 죽인다고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동반성장 경영’에 정면에 도전하며 ‘재벌특혜’논란의 선봉에 서고 있다.

잠실 송파는 풍수지리상으로 특별한 곳이다. 국운의 혈자리이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정도를 지나침은 도리어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석촌호수를 한 회사가 독점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다. 송파구의 역사적 취지를 묵살하는 것이다.


석촌호수를 역사와 시민에게 돌려달라

석촌호수는 공유수면이다. 롯데월드가 석촌호수(서호)에 매직아일랜드를 만들 때 20년 사용한 뒤 송파구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1990년 개장했다. 송파구청 담당자에 의하면 2010년 3월 공공임대 형식으로 연 약 50억 원에 10년 간 재계약하였다. 비록 합법적이라고는 하나 그 산하(山河)의 기(氣)까지 임대할 수는 없다.

제1롯데월드 건립당시 충분히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당시 건축 중에 몇십명 이상의 인부가 사고로 사망했다. 2006년에는 놀이기구를 타던 28살 성모씨가 임대한 석촌호수 공유수면에 떨어져 숨졌다. 공교롭게도 송파 지역은 전국 최고의 교통사고 사망 다발지역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최대 격전지역에 123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 신축이라니.

우리의 국운이 뻗어나가려면 석촌호수터의 송파나루 뱃길이 열려야한다. 그런데 롯데월드가 유수를 가로막고 있다. 송파는 돛단배 풍수터다. 123층 초고층 빌딩은 돛단배에 말뚝을 때려 박은 형국이다. 돛단배가 순풍에 나아가기는커녕 물이 새는 형국이다.

순풍에 돛을 달려면 한강 본류에 과거 송파나루 뱃길이 트여야한다. 옛 송파나루터가 재현될 때, 국운은 상승하고 민족 통일은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서울시와 송파구는 큰 안목의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야한다. 물길이 복원되고 송파나루를 콘텐츠로 하는 축제와 거리가 재현된다면 연 50억 원 이상의 수익이 구민에게 분배될 것은 물론이요, 돈으로 셈할 수 없는 국운상승이 특효가 있기 때문이다.

MB가 청계천 물길을 복원하여 대권을 거머쥐었듯, 이번 대권은 한반도 패권과 관련된 송파나루의 역사적 의미를 아는 인물이 승천하리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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