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부울경(부산·울산·경남) 3개 단체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결정된 김해 신공항 건설 대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면서 신공항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최정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가 ‘김해 신공항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밝혔다가 다시 ‘총리실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을 바꾸면서 신공항 건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외형상 부울경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미묘하게 입장 차가 있고 주무부처인 국토부와의 갈등에 대구경북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갈등까지 더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내년 총선과 맞물려 집권여당은 부울경 최대 현안인 신공항 문제를 선거에 최대한 활용할 것이란 시각도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과 부산·울산·경남 단장들이 동남권 관문공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승욱 경남경제부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박재호 의원. 뉴시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과 부산·울산·경남 단장들이 동남권 관문공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승욱 경남경제부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박재호 의원. 뉴시스

 

- 신공항 부·울·경 “총선이 코앞인데… 가덕도” 몰아치기
-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 김해신공항 ‘계획대로’… 여(與) 3단체장 ‘반발’

동남권 신공항은 위치 결정 당시 경남 밀양, 부산 가덕도를 부산·대구·경남이 갈등을 빚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김해신공항으로 결정하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6년 6월경이다. 당시 대구 경북 단체장에 부울경까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소속 5개 단체장의 합의도 한몫했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부산·울산·경남 단체장을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면서 기류는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오거돈 부산시장이 총선 공약으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17일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김해 신공항 사업은 잘못된 정책 결정이어서 많은 시간과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며 국민을 고통받게 할 제2의 4대강 사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뒤 “안전·소음·환경·경제성·확장성 문제가 있는 김해 신공항은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총리실 차원에서 검증” 논란 키워

부산·울산·경남지역 광역 단체장이 주도해 구성한 ‘김해 신공항 부·울·경 공동 검증단’이 검토한 결과 국토교통부의 김해 신공항 건설계획은 미국·유럽 등 중·장거리 국제여객과 화물기가 취항할 수 있는 24시간 안전한 동남권 관문공항 기능과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는 게 오 시장의 주장이다. 오 시장은 “조속한 시일 내에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게 김해 신공항 건설사업을 국무총리실에서 검증하라”고 촉구했다.
    
오 시장이 ‘총리실 검증’ 요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밝힌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2월13일 부산지역 경제인과 오찬 자리에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과 관련, “총리실 차원에서 검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 부산·김해시민이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며 “(부산·울산·경남의) 검증 결과를 놓고 5개 광역자치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에 생각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서 검증 논의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을 비롯해 부울경 단체장들은 문 대통령이 기존 김해 신공항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첩첩해 있다.

당장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대구 경북권은 반대하고 있다. 특히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18일 “김해신공항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분명하게 뜻을 밝혔다. 최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부 2차관에 재임할  당시 김해 신공항 결정 책임자였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즉각 반박했다. 오 시장은 “최 후보자의 서면답변은 국토부 기존 입장을 원론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생각한다. 장관으로 확정된다면 대통령 뜻을 거스를 수 있겠나”라며 반발했다. 반면 한국당은 최 후보자가 신공항 건설 책임자였던 만큼 입장이 바뀔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 후보자는 지난달 24일 서면답변을 통해 “부울경 검증단 검증 결과가 나오면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이어 25일에 최 후보자는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서형수(더불어민주당, 경남양산시을) 의원이 ‘총리실에서 김해신공항 취소 요청을 하면 수용할 것이냐’고 질문하자 “정부조직법은 법정사항이어서 거기에 해당되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답해 기존 김해공항 확장 방침을 변경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당장 한국당 의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은 “국토부가 2년 걸린 용역 결과를 부울경 검증단이 4개월 만에 뒤집으려 하고 있다”며 “최 후보자는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합리적인 결과가 정치적 영향에 좌우되면 안 된다”고 질타했다.

특히 한국당 의원들은 ‘국가 중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이랬다저랬다 할 수 없다’며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최 후보자가 당초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했다가, 다시 “부울경 검증단 검증 결과가 나오면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하면서 국회 청문회에서 여당 국회의원은 ‘재검토’, 야당 국회의원은 ‘계획대로 추진’이라는 등 동남권 신공항 건설 논란에 또다시 불을 댕긴 결과를 초래했다.

 최정호 장관후보자, ‘말 바꾸기’ 기름 부은 격

논란이 커지자 최 후보자는 해명문을 통해 “총리실이 취소하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정부조직법 제18조에 규정된 사항을 원론적으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김해신공항 선정 입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 후보자는 “부산 울산 경남 검증결과가 나오면 지역과 적극 소통하고, 총리실이 검증절차를 시작하면 적극 협조하고 참여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총리실’이 신공항 문제에 거론되자 이낙연 총리도 나섰다. 이 총리는 3월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박재호 의원의 질문을 받고 “국토교통부와 부·울·경 김해신공항 검증단 사이에 서로 수용 가능한 조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면서 “만약 조정되지 않고 표류하게 된다면 총리실에서 나서 조정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총리실 검증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해신공항 계획을 수립한 국토부가 아니라 총리실에서 이 문제를 공정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부·울·경이 그동안 지속해서 요구해 온 내용이다. 이 총리 발언은 지난 2월13일 부산 대개조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검증 논의 기구 승격을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재확인한 것이다.

야당은 결국 부울경 단체장과 의원에 총리실까지 나서 내년 총선용으로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부산시장 시절 김해신공항을 수용했던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 입장을 내놓았다.

그동안 지방선거 패배 이후 침묵하던 서 전 시장은 9개월 만인 지난 3월20일 페이스북을 통해 “괜히 오거돈 부산시장이나 이낙연 국무총리를 내세워 영남권 5개 시·도 주민 갈등만 조장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김해신공항 대신 가덕도 신공항건설 하겠다고 지시하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남권 5개 단체장부터 합의해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무총리실에서 검토하라면서 이리 빼고 저리 빠지면서 시간만 끌 일이 아니다”라며 “그리하면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영남주민 특히 부산시민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부산시의 행보를 비난했다.

실제로 부울경 경제 악화로 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당수 빠진 상황이다. 내년 총선에서 지난 지방선거와 같은 압승 분위기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한국당이 다시 부울경을 가져갈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은 부울경 즉 낙동강 벨트를 묶어 두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당에서 총선용으로 보는 이유다.  

울산시, “신공항? 조건부 찬성” 부산과 결 달라

그리고 부울경 역시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해 울산과 부산·경남은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울산시 한 관계자는 “울산시도 기본적으로 가덕도 신공항에 찬성을 하고 있지만 결은 좀 다르다”며 “왜냐면 기존 김해신공항보다 가덕도 신공항이 30km 더 멀어 울산은 부산시에 광역교통망 확충을 조건으로 찬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조건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에 찬성하는 것이지 내심은 공동보조를 맞추는 게 곤혹스런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 부울경 김해신공항 검증단 검증결과는 3월 말이나 4월 초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증결과를 토대로 부산 울산 경남지역 의견을 정리해 국무총리실로 이관한 뒤 최종결정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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