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꾸준히 증가···연예인만의 일탈 아냐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계단에 불법촬영 범죄예방을 위한 래핑 홍보물이 설치된 모습. [뉴시스]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계단에 불법촬영 범죄예방을 위한 래핑 홍보물이 설치된 모습.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가수 정준영, 승리 등의 불법 촬영물 유포 사건을 두고 비단 일부 연예인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들의 범죄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직장 내 불법 촬영물 범죄 늘어···신고 건수 3

피해당해도 당사자알기 어렵다···신고 꺼리는 경우 많아

경찰에 따르면 정준영은 성관계 동영상과 여성을 찍은 사진 등을 메신저의 개인단체 대화방에 공유했다. 대화방에 참가한 이들은 올려봐라고 독촉하고 웃음으로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행각은 이미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 범죄는 지난 20134823건에서 20176465건으로 34% 증가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32832명이었던 불법 촬영물 피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75437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피의자 수는 16802명으로 나타났다. 피의자 중 97%가 남성이며 피해자 83%는 여성이었다.

얼굴을 아는 사람들(면식범)로부터 당하는 피해도 지난 2013338명에서 꾸준히 늘어 2017939명으로 증가세다. 이 가운데 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7.7%로 절반에 달한다.

직장 내 불법 촬영물 범죄도 늘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직장 내 성범죄가 5년 전보다 62% 증가한 가운데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물 신고 건수는 3배가량 늘었다.

전문가, 불법 촬영 두고

남성성 인정받는 문화

불법 촬영물 피해는 실제 신고 건수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당사자가 피해를 알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준영 일당처럼 메신저를 통해 촬영물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내부자가 아닌 이상 피해 사실을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준영 일당의 범행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봤다. 대학생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신입생이나 학교 동료들의 사진영상을 올려 논란이 됐던 과거 사건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번 사건은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남성들이 가까운 관계의 여성을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지, 어떻게 성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유포하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일반 남성들이 아닌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킨 문제라고 굳이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불법 촬영물 범죄는 남성들의 적극적인 동조묵인 하에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불법 촬영물을 찍고 공유하는 행위가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성을 인정받는 문화로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정준영의 단체 대화방만 봐도 불법 촬영물을 올리는 남성은 이를 자랑하고, 다른 남성들은 세다’, ‘더 없냐는 식으로 부추기거나 자신도 불법 촬영물을 찍어 올린다면서 불법 촬영물을 내가 얼마나 힘세고 거칠고 제대로 된 남성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증거물로 여겨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화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내부자에서 외부자가 될 각오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A(31)씨는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들끼리 함께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성관계 영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들의 사진이 올라올 때가 있다면서 친한 사이인데도 대부분 웃거나 맞장구를 치는 분위기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 한마디 하기가 쉽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대학생 B(25)씨도 다른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혼자 정색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고 나만 소외되는 느낌도 들 것 같아서 불편하면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처벌 강화 넘어

남성들 목소리 높여야

전문가들은 불법 촬영물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넘어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남성들 사이에서 불법 촬영물은 범죄이며 남성성을 증명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공고한 문화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이제는 나까지 위험에 빠뜨리지 마’, ‘공유하지 마라는 남성들 내부의 목소리가 절실하다면서 잘못된 판을 깨뜨리고 이런 일은 범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정준영과 승리의 지인 김모씨가 29일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정준영은 총 13차례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준영과 김 씨의 불법 촬영물 의혹은 승리의 성접대 의혹에 대한 수사 중 포착됐다.

경찰은 지난 12일 정준영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입건하고 지난 18일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19일 영장을 청구했고 이들은 21일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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