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지탄받던 시절이 있었다.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가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라고 시작하는 것처럼 오래전 머나먼 때에는 대한민국에서도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연하던 시절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던 그 시절은 너무 아득해서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고전에 나오는 사자성어도 아니고,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도 아닌데, 21세기 한국정치에서는 대적불가한 띵언으로 통한다. 띵언은 명언이라는 말을 젊은 세대가 모양이 비슷하다고 바꿔 부르는 말이다. 내로남불이란 단어는 자신이 엊그제 한 말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한국정치의 작태를 온전히 담고 있다.

내로남불이란 단어는 15대 국회 당시에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이 한 말에서 유래한다. 당시 박 의원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의 야당 의원 빼내가기에 야당이 반발하자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냐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캐디 성추행으로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마감한 국회의장 출신 보수 거물과 함께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났어야 할 유물이 아직도 기세등등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재판으로 구속 수감되었을 때, 여권의 반발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김경수 지지자나 여권의 발발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였다는 비판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김경수 지사의 처지를 곤궁하게 몰고 간 것은 여권이 해당 재판부를 사법적폐로 몰아간 정치적 행위 탓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권의 반발에 대해 “헌법 불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일이 벌어졌고 상황은 역전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의혹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나 원내대표가 사법부 비판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영장기각 결정을 보면 어이가 없다”면서“(담당 판사가) 임종석 전 실장과 같은 대학교 출신이면서 노동운동을 했다”는 말로 영장을 기각한 담당 판사를 공격했다. 판사 출신으로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던 입장을 뒤집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내로남불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25억 건물 매입’논란에 대처하면서 보여주는 ‘내로남불’의 자세는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에 김의겸은 한겨레 기자로 조선일보 이진동, JTBC 손석희와 더불어 촛불 정국에서 맹활약한 언론인 가운데 하나였다. 촛불정국을 가로지른 기자정신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16억을 대출받아 25억짜리 재개발 지구 상가를 구입해서 상당한 차익을 실현했다.

문제는 이 ‘성공한 투자자’가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LTV는 40%로 제한되고 DSR이 도입되었으며,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은 중도금 대출도 막혔다. 사실상 서울에서 현금 4억을 쥐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차 없이 규제의 부동산 규제의 칼을 휘두르는 정부의 핵심 당국자가 이런 규제를 홀연히 뚫고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빚을 끌어다가 알짜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런 내로남불, 자가당착을 목격하고 누가 정부정책을 신뢰하고, 어떤 입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전월세 전전하는 시민들은 부끄러울 뿐이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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