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 이학수, 이번에도 “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다스 의혹 항소심 1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다스 의혹 항소심 1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박나리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날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잇따른 증인 불출석, 조건부 보석 논란에 이어 이번엔 ‘욕설’이다. 이 전 대통령이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법정에서 욕설을 뱉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형국이다.



1심 결정적 증거 된 ‘이학수 자수서’…이명박 “이야기 자체가 거짓” 반박
퇴정시키겠다는 재판부 경고에 李 “증인을 안 보려고 하고 있다”



이명박(78) 전 대통령은 다스 비자금 횡령 및 삼성 뇌물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언도받은 뒤 항소를 제기, 항소심에 들어섰다. 이 전 대통령은 ‘수비전’에 주력한 지난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는 증인을 대거 신청하는 등 ‘공격 태세’를 취했다. 


증인 출석 미지수
이학수,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혐의에 대한 증인으로 이학수(73)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의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항소심 15차 공판에 이 전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당초 이 전 대통령 측은 재판부에 증인 22명의 명단을 제출했고, 이 가운데 15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비서관 등 증인 채택된 이들이 줄지어 불출석 의사를 표하면서 이 전 대통령은 재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지난 2월 13일 이 전 대통령 측은 재판부에게 강제구인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지난 1월 9일 개최된 2차 공판에 ‘폐문부재’로 증인소환장 송달이 안 돼 법정에 나오지 않는 등, 이번에도 출석 여부가 미지수인 상태였으나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서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몰렸다.

특히 이 전 부회장의 증인 출석은 이 전 대통령이 그와 맞선 과거가 있어 더욱 주목받는다. 앞서 진행된 1심에서 이 전 부회장의 자수서가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유죄 판단에 있어 스모킹 건으로 작용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 전 부회장은 삼성이 다스 미국 소송비용 61억 원을 제공했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를 두고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당시 “이야기 자체가 거짓이다. 이학수가 그렇게 말했다면 정식으로 고발하겠다”며 그의 주장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은 2심서도 원심과 동일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증인신문 당시 “수십억, 수백억이 들지 모르고 이 전 대통령 측이 요구하니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원했다”며 ‘삼성 뇌물’을 시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통상 변호사가 미국에서 법률 비용이 좀 들어간다고 하는데 수백억 이렇게 상상은 힘들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며 “금액이 우리에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스 소송을 대리한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그런 요청을 하니 우리로서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소송비용 지원이 김 변호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며, 삼성 측에서 먼저 지원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검찰이 이 전 부회장에게 “이 전 대통령에게 지원하는 자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혹은 어디 사용될 것인지 확인해봤느냐”고 묻자 이 전 부회장은 “그때 확인한 건 없다”고 답했다.

이와 더불어 “법률 비용으로 사용됐는지 다른 곳에 사용됐는지 정확히 모르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이 전 부회장은 “네”라고 말했다. 


‘미친X’ 욕설에 
“천재야” 비아냥까지


이 전 부회장의 진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자 이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미친X’이라 욕설을 해 논란이 됐다.  같은 날 이 전 부회장의 증인신문이 완료된 후 검찰은 “증인이 이야기할 때 이 전 대통령이 ‘미친X’ 이렇게 욕한 것을 검사 여러 명이 들었다”면서 “우리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증인신문이 진행될 때 무슨 말이든 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증인이 증언하는 것이 듣기 싫고 거북할 수도 있는데, 절차상 증언할 때 표현을 하면 (재판에) 방해가 된다”며 “내가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는데 마주 보고 있으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재판부는 퇴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 점을) 상기해 달라”고 제지했다.

이 같은 검찰과 재판부의 지적에 이 전 대통령은 “알겠다. 내가 증인을 안 보려고 하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보다 앞선 지난 15일 같은 재판부의 심리로 개최된 12차 공판기일에서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증인으로 나와 발언할 당시에도 태도 논란을 산 바 있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조건부 허가한 이후 일주일 만의 공판으로, 이 전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로 임하는 첫 번째 재판이었다. 증인석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과 김 전 기조실장이 앉았다.

이 공판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원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별활동비 2억 원 및 현금 10만 달러를 건네받은 혐의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이 가운데 2억 원은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으로부터, 현금 10만 달러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거쳐 받았다는 골자다.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고를 손실했고, 이를 지시한 이 전 대통령도 공범이라고 판단해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 유죄로 봤다. 

김 전 기조실장은 원 전 원장의 취임 초기 기조실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원 전 원장의 전임인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근무할 당시부터 국정원 예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인물이다.

이날 그는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돈을 상납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날 김 전 기조실장이 구체적인 증언을 하자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변호인에게 “천재야”라고 그를 향해 비아냥 거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1992부터 2007년까지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약 339억 원을 조성(횡령)하고, 삼성에 BBK 투자금 회수 관련 다스 소송비 67억7000여만 원을 대납하게 하는 등 16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에 1심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보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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