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양면성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느 4,50대와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평일에는 거의 TV를 볼 여유가 없다. 평일에는 고객들의 투자 상담이며 각종 회의와 정보공유를 위한 컨퍼런스 콜이 하루 종일 숨 가쁘게 이어진다. 폐장 후에는 섭외를 중심으로 한 각종 외부활동이 아주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평일보다 다소 느슨하기는 하지만 주말에도 역시 미국이나 유럽증시를 살펴보고 각종 경제지표를 점검한다. 이는 다음 주 투자전략을 수립하느라 분주하여 사실 TV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가족들과의 식사 전후 잠깐 뿐이다.

최근 잠시라도 틈이 나면 곁눈질하게 되는 TV프로그램이 예능이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가장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바로 어휘의 남발과 오남용이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하여 도입되어 이제는 거의 일반화된 오락프로그램의 자막은 본래의 목적과 의도대로 잘 기능하여 시청자들의 유쾌함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간혹 지나친 의욕과잉으로 어휘가 본래 지닌 뜻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사용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국민여동생’이니 ‘국민MC’네 하는 식의 ‘국민’류의 접두어가 붙은 어휘가 특히 대표적이다.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진 출연자의 경우 대개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하여 띄워주기에 바쁜데 사실 이것은 시중에 유행하는 말로 ‘안습’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할 정도로 유명하고 온 국민이 알만한 인사는 사실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한데 툭하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행태를 보면 어휘의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어휘의 인플레이션이야 그저 애교로 보아 넘길 수 있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지나친 가치 확대 현상은 거의 병리학적 수준이라는 진단이다.

지나친 학력 인플레이션과 호칭 인플레이션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진학률 80% 이상, 주고받는 명함에 찍힌 직급은 거의 회장님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플레이션은 결국 사회전반의 불필요한 비용을 야기하고 성장잠재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병리학적 현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본래 거시경제학 용어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개념이기에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이는 통화 공급, 명목소득 그리고 물가의 상승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물가의 지나친 상승을 가리키며, 경제의 선순환 시 적절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규모와 활력을 일으키는 긍정적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지난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인상으로 대표되는 인플레이션의 우려를 반영하여 다시 기준금리를 0.25% 인상하였다. 2개월 전의 금리인상에 이은 금번 금리인상은 그간 성장에 올인 했던 정부의 기조가 물가관리 쪽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하는 명백한 증거이다.

금통위는 유가 상승에서 비롯된 공급측면의 압력과 기대 인플레이션 및 구제역과 이상한파로 인한 수요측면의 압력을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물가 상승률이 높은 상태에서 4월 재보선 선거와 내년의 총선 및 후년의 대선까지 치러내야 한다는 것은 그대로 자살골을 넣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서서히 금리를 상승시키면서 물가안정을 꾀한다는 것은 통화당국의 당연한 수순으로 읽힌다.

이러한 정책의지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당분간 더 오르리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반적 분석이며 따라서 정부는 많은 정책적 노력을 동원하여 물가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수혜를 볼 수 있는 종목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환율 역시 내려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원화절상에 따른 수혜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어휘의 경우 적당한 과장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키고 유쾌함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과도한 사용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과도할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커다란 손실과 고통이 따르게 된다. 통화당국은 금번 금리인상 카드를 뽑아들고 시장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SK증권 마산지점 서문수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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