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정상화 신호탄…車 업계로 확산되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가 지난 3일 한국GM 정문 앞에서 ‘한국GM 신설법인 단협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가 지난 3일 한국GM 정문 앞에서 ‘한국GM 신설법인 단협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한국지엠(GM)이 신설법인 설립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단협) 70개 항목에 대한 수정과 삭제를 요구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그동안 기싸움을 벌이던 노조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요구안에는 ‘정리해고 일방통보’와 ‘징계 범위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노조는 이를 ‘단협 개악’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쟁의권 확보에 나섰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불황에 빠진 상황에서 노사갈등까지 더해져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만큼, 이번 일이 노사관계 정상화의 신호탄이 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측 “노조와 협력적인 관계로 경쟁력 강화”
노측 “사측 단협 개악안 철회 쟁의조정 신청”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는 지난 3일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쟁의조정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한국GM 연구개발(R&D) 신설법인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의 단협을 ‘개악안’으로 정의하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단협안에 ‘조합원의 징계사유 강화’와 ‘업무태만 해고를 자유화’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2012년 사라진 성과연봉제 부활안과 노조의 경영참여 조항 일체도 삭제하려는 안이 내부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달 14일 4차 교섭에서 총 133개 조항으로 구성된 단협 중 53개 조항을 수정하고 17개 조항을 삭제하는 등 70개 조항에 대한 수정과 삭제를 요구했다. 또 3개 조항을 신설하고, 별도요구 6개 항목을 제시하기도 했다. 

GMTCK는 한국GM 노사 갈등 속에서 올해 1월 2일 공식 출범했다. 앞으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배정을 확정 받은 차세대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새로운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CUV) 등 2종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주도한다. 이를 위해 기존 한국GM 전체 인원 1만3000명 가운데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부문 인력 3000여 명이 신설 법인으로 소속이 변경됐다.

“한국 사업 철수 수순”

GMTCK는 지난 2월 28일 단체교섭을 시작해 8차까지 교섭이 진행됐다. 노조는 신설법인이라도 기존 단협을 그대로 승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측은 신설법인이기 때문에 수정·삭제가 아닌 새로운 단협을 맺기 위한 조처라며 맞서고 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는 지난 3일 한국GM 정문 앞에서 ‘한국GM 신설법인 단협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단협 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관계자는 “사측의 단협 개악안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리후생, 근로시간 등에 대한 권리 후퇴는 물론, 단결권, 쟁의권 등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내용 일색이다. 회사 경영과 고용불안 문제에 대한 노조의 개입 권한 역시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서의 사업철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데 노조의 무력화만큼 사활적인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무력화 시도 아냐”

하지만 사측은 GMTCK의 특성상 연구원이 대부분이기에 생산직 위주의 단협을 적용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번 조치가 노조 무력화가 아닌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GM 관계자는 “GMTCK와 노조는 지난 2월 28일 노사 간 상견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8차례의 단협 교섭을 진행해 오고 있다. 회사는 노조와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다만 협상이 진행 중인 관계로 회사 요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에 따라 중노위는 향후 10일간 노사간 조정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중노위가 조정중지를 결정할 경우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해진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행정지도 또는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한편 업계에서는 자동차 산업 불황 속에서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강성으로 분류되는 완성차 업체 노조와의 갈등이 경영 정상화에 악영향을 끼쳐왔던 만큼, 이번 사태가 노사 관계 정상화의 시범사례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차 업계가 금속노조 산하에 있는 약간의 강성 노조 형태를 띠고 있다 보니, 노사 문제는 늘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서 회사 경영 정상화를 이뤄 나가고 잘 해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단협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쟁의조정 신청 역시 노조가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상의 하나이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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