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 악재 사슬에 끝없는 나락…암호화폐 제도화는 아직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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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대표적인 가상화폐(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점점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6000달러(한화로 약 682만 원)로 급등했고,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갑자기 16조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가 급증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가상화폐 대부분이 익명 거래이고 범죄자들에게 점점 더 많이 사용되면서 가상화폐를 운영하는 블록체인 기업들은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일탈들이 반기업정서를 부추겨 업계 전체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투자 열풍에 편승한 다단계·비자금 조성·도박 자금 등 일탈행위 심각 수준
경찰 “서민경제 안전과 경제 질서 보호를 위해 선제적 특별단속 실시”

‘반기업 정서’ 확대 우려에 업계 “자성 목소리 내자”는 분위기
“국내도 ‘암호화폐 거래 주소제’ 등 법적, 제도적 기반 마련해야” 

비트코인이 마약 유통 자금으로 구설에 올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가 3세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해 마약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 3세들은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공급책 이 씨에게 접근, 마약 구매에 필요한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다.

이 씨는 이들로부터 전달받은 돈을 비트코인으로 바꾼 후 판매자에게 보내 마약을 구매했고 이를 재벌 3세 등에게 전달했다.

범죄에 사용되는 사례 증가 추세

코인을 미끼로 200억 원대 다단계 사기를 벌인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무료 코인 등을 미끼로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회원을 모집, 단기간(6개월)에 전국적으로 5만6000여 명의 회원을 유인하고 212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인터넷 쇼핑몰 업체와 코인업체 대표 등 10명을 형사입건하고 이 중 주범 2명을 구속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번 수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한 수사기법으로 불법 의심 업체를 적발하고 형사입건까지 한 첫 사례다.

온라인 콘텐츠에서 불법 다단계 홍보가 의심되는 게시물이나 이미지를 실시간 수집ㆍ저장해 자주 발견되는 패턴을 AI에 학습시켜 불법 키워드를 자동으로 판별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은 무료 코인, 인터넷쇼핑몰 최저가 이용, 회원 추천 시 수당 지급 등을 내세워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서울지역 1만2058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5만6201명의 회원을 모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대다수는 암호화폐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퇴직자, 주부, 노인 등이었다. 특히 이들은 쇼핑몰 회원이 다른 회원을 데려올 경우 1인당 6만 원씩 추천수당을 주는 다단계 방식으로 회원을 늘려나갔다.

최대 69단계의 피라미드 구조를 보인 회원도 있었다. 또 회원에게 코인 600개를 무료로 지급하며 회원을 모집했다. 희망자에겐 코인 당 5원~100원에 추가 판매하기도 했다. 회원들은 추가 회원을 모집하며 받기로 한 수당 93억 원을 받지 못했다. 또 서울시 수사가 시작되면서 코인 거래소도 폐쇄돼 일부 회원은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투자금을 잃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썬 사건에서도 비트코인의 악용 사례가 드러났다. 버닝썬 게이트 연루 관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타이완 여성 린사모가 대규모 자금을 암호화폐 거래소 작전으로 조달했다는 정황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린 사모는 버닝썬 초기투자금 24억5000만 원 가운데 약 40%에 달하는 10억 원을 투자해 버닝썬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MBC에 따르면 린 사모는 지난해 10월 서울 롯데월드타워 펜트하우스를 240억 원에 사들였다. 린 사모가 국내 부동산에 투자한 돈은 최고 300억 원이라고 한다. 린 사모 지인은 이날 MBC에 린 사모가 이 같은 거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데 대해 “암호화폐가 비결이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거래량이 적은 암호화폐를 골라 가격을 올린 뒤 순식간에 팔고 나오는 이른바 ‘작전’을 썼다는 내용이다. 이 지인은 “(린 사모 측에서) 페이스북에 엄청나게 글을 올린다. 사람들이 돈 벌 줄 알고 막 샀을 때 린 사모 측에서 돈을 뺐다”며 “그럼 돈이 확 줄 것 아니냐.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가 ‘김치 프리미엄’(암호화폐가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30∼40%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이용해 대만과 홍콩의 암호화폐도 거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MBC는 전했다. 암호화폐 열기가 뜨거웠을 당시 특정 화폐들은 국내에서 더 비싸게 거래됐는데, 린 사모가 외국에서 싸게 산 암호화폐를 국내에서 비싸게 팔아 차액을 남겼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현재 린사모의 금고지기 안모씨를 피의자로 입건해 투자금 조성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암호화폐를 범죄에 활용하는 사례는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범죄 종류도 암호화폐를 이용한 도박이나 자금 세탁, 비자금 조성, 포르노, 성범죄, 무기매매, 불법 콘텐츠 거래 등 다양하다.

범죄자들은 암호화폐가 본질적으로 익명성이 높은 데다 기존 수사기관들이 암호화폐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과 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허점을 노려 암호화폐를 범죄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당국에 따르면 2018년 경찰에 신고된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 의심 거래는 7000건에 달한다. 2016년에는 660여 건이 접수됐었는데 1년 새 무려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현지 경찰청은 증가하는 암호화폐 불법 사용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부터 암호화폐 거래 추적 소프트웨어를 수사과정에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블룸버그 로우는 미국의 한 법조 전문가의 말을 인용, 가상화폐(암호화폐)의 익명성과 추적이 불가능 하다는 점이 비자금을 암암리에 마련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부유층의 경우 금융 관련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데 이때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부동산과 유동자산, 부채 등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개인정보가 보호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자금 세탁 이외에도 벌어들인 수익을 감추는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다. 암호화폐 비관론자이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 4일 개최된  ‘제2회 분산경제포럼(Deconomy 2019)’에 참석해 “암호화폐는 사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하는 이유가 있다. 횡령, 탈세, 테러리즘, 인신매매 등이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것은 익명성 때문”이라며 “어떤 정부도 익명성을 가진 암호화폐를 옹호할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루비니 교수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기술적 문제도 지적했다. 일명 ‘트릴레마’로 불리는 확장성, 분산화, 안정성을 동시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비트코인이 스위스 은행처럼 익명성을 악용하는 용도로 사용돼선 안 된다”며 “암호화폐는 법정화폐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미래 이끌 산업’ 낙관론도

현재로선 범죄에 악용되는 암호화폐를 적발하는 일이 쉽지 않다. 우선, 암호화폐 거래 자체가 개인간 거래(P2P)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제삼자가 개입해 막기 어려운 것이다.

또 현금화 과정에서 불법거래 추적이 가능하다 해도 당사자 처벌이나 자금 압류 등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암호화폐 찬성론자이자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제2회 분산경제포럼에서 암호화폐가 아직 초기 단계라는 논리로 관중의 박수를 받았다. 현재의 모습으로 암호화폐 시장과 블록체인 산업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부테린은 “이더리움 확장성 강화 기술인 샤딩(Sharding) 등 새로운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며 “결제, 해외 송금 등 암호화폐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영역에서 사용성도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암호화폐로 분산화가 가능하며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부테린은 “현재 금융 시스템에선 일부 정부와 기업에 영향력이 집중돼 있다”며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완전히 대체하진 않겠지만, 틈새를 장악할 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청 또한 최근 가상화폐 투자열풍에 편승해 가상화폐 투자를 빙자한 다단계 사기와 유사수신 사기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서민층 피해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가상화폐 투자사기 등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돌입하고 있다. 중점 단속대상은 다단계 조직을 이용한 가상화폐 판매 사기, 가상화폐사업·채굴사업 등을 빙자해 고수익 배당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집하는 유사수신 투자사기이다.

이 밖에 가상화폐 거래업체나 구매대행자 등에 의한 횡령.사기 사건에도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원경환 경찰청 수사국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투자금 모집자나 상위 직급자들을 엄중 처벌해 재범을 차단할 것이고, 경찰수사 이후에 명칭이나 장소를 바꿔가며 계속 범행을 하는 경우 전담팀을 편성해 반드시 추적·검거할 것”이며 제보자 등 범인 검거 공로자에 대해서는 신고보상금을 적극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가상화폐와 관련된 투자나 거래를 할 경우 계약조건과 수익구조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며, 가상화폐를 다단계로 판매하거나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금을 모집하는 경우에는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정부는 이런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지난 1월 20일부터 도입했다.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시작되면 대포통장의 사용이 어려워지고, 미성년자 및 범죄자, 국내 비거주 외국인의 투자가 힘들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거래 기록 역시 남기 때문에 가상화폐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도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쉽지 않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시행하지 않는 거래소는 퇴출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재벌가 암호화폐 진출 가속화 발 빠른 3세들 누구

국내 재벌가도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대선 현대BS&C 사장이다. 블록체인 기업 ‘더블체인’과 합작해 만든 가상화폐 Hdac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기간 큰 성과도 냈다.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1만4000비트코인 어치 완판에 성공했다. 이는 당시 비트코인 시세로 환산하면 약 500억 원 수준,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2000억 원 이상이란 분석이다.

정 사장은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조카다. 한화그룹도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와이즈’는 한화생명,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 등 그룹 내 금융계열사들이 암호화폐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한화그룹은 세계블록체인업계의 거물들이 모두 모였던 제1회 ‘분산경제포럼’ 때는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한화그룹을 암호화폐의 세계로 이끈 주인공은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 김동연 한화생명 상무로 알려진다.

평소 핀테크와 블록체인, 암호화폐 등에 관심이 많은 김 상무는 한승환 업그레이드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

코인와이즈는 2018년 8월 강원 양양에서 열린 해커축제 ‘크립토 온 더 비치’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참석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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