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일요서울과 인터뷰한 허재현 기자.
지난 4일 일요서울과 인터뷰한 허재현 기자.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최근 ‘마약’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클럽 버닝썬에서 ‘물뽕(GHB)’이 횡행했다는 의혹 이후 정재계 관련 인물들의 마약 투약 의혹 보도가 잇따르면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 가운데 허재현 전 한겨레 기자가 경찰의 마약 함정 수사 방식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경찰 수사에 마약 혐의 입건자 끌여들여”


허재현 기자는 한겨레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5월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돼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는 자숙기간을 거쳐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에서 한국사회가 그간 다루지 않은 마약 제도와 마약 투약자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이 문제를 두고 사회에 물음을 던지기 위해 언론 매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일요서울이 지난 4일 허 전 기자와 서울시 모처에서 만나 경찰의 마약 함정 수사 논란과 마약 투약자들의 사회 복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마약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요즘의 보도를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 마약 범죄에 대한 보도의 원칙이 어디까지 진행돼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약 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나 보도에 대한 기준과 원칙이 한국사회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이나 유명인 등 공직에 있지 않지만 유명한 사인(私人)들이 있다. 이들이 마약 범죄나 도로교통법 위반 등 개인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이것을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원칙은 권력과 지위를 남용한 사회적 부정부패와 연관된 범죄 등이라면 (개인의 범죄 사실이) 공개돼도 이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개인의 직무와 연관된 범죄나 우리 사회 공공의 영향력이나 권력이 개입된 범죄가 아니고, 순전히 개인의 범죄라면 유명한 사인일지라도 이것이 알려져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은 정립돼 있지 않다. 

-공직에 있지 않더라도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지위를 가진 이들이 아닌가.
▲공직에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위임한 공공의 권력을 지닌 직업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그 사람들을 감시할 필요가 있고, 그들도 사생활을 어느 정도 공개할 의무가 있다. 물론 유명한 일반인이 취재의 대상은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사생활과 관련된 범죄라면 이것을 과연 어디까지 국민이 알아야 하는가(는 고민해 봐야 한다). 

유명한 개인에게 ‘너는 조금 더 도덕적으로 엄격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 거 아니야?’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직무와 연관된 범죄가 아니라면 개인의 회사나 지인의 테두리 안에서 비판이 벌어져야 한다.  

-당시 ‘함정수사’ 논란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도 했다.
▲나는 경찰이 마약을 투약하는 현장을 급습해 적발된 것이 아니다. 내가 이용하던 SNS어플리케이션에서 지난해 즈음부터 나에게 마약을 권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졌다. 온라인에서 마약 유통이 늘어난 시기와 겹친 것 같다. 당연히 모두 거절했다. 연락을 끊으면 아이디를 바꿔서 또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경찰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결국 한 번 나가 봤다.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3명 정도의 경찰이 들어왔다. 나를 유인했던 사람은 경찰이었던 것이다. 사용자를 상대로 무작위로 (그런 메시지를) 발송을 한다더라. 이후 경찰서로 같이 가 달라고 해 ‘내가 현행범도 아니고 조사에 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니 경찰이 자신들이 체포 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내 수사 정보를 철저히 비밀로 유지해 달라. 대신 모든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임의동행 형태로 경찰서에 갔다.

검사 보름 후에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의 수사 방식이 부당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떻게 함정수사를 할 수 있느냐’고 항의 한 번 하지 않았다. 내 행동에 대해 책임지고 싶었다.

-부당하다고 여긴 부분은.
▲경찰이 마약 투약자에게 계속 접근해 마약을 하고 싶도록 부추긴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 화가 난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옆에서 현혹하지 않으면 마약 안 할 수 있는데, 자꾸 현혹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약 중독의 재발률이 높은 것이다. 

마약 투약자 가운데에는 자신 스스로는 (마약을 다시) 안 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의지가 흔들리는 순간 옆에서 부추기면 (마약 투약 현장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약 범죄의 특징이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트리거(trigger·방아쇠, 촉매) 유발’이라고 한다. 

마약 범죄자들의 재발을 낮추기 위해서 주변 지인이나 사회가 도울 부분은 (이들의) 트리거를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마약 범죄의 재발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오히려) 국가가 계속해서 트리거를 유발한다. 경찰은 자신들이 (마약 범죄자의) 트리거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약은 재발률이 높은 범죄니 이런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이외에도 마약 범죄자들을 검거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면 마약 판매책들을 함정 수사를 통해 잡는 것이다. 마약 판매책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거나 추궁을 해서 마약 판매자를 찾고, 투약자들을 검거하면 된다. 이 방식으로 검거하면 (마약 투약자의) 트리거도 유발하지 않으면서 판매책과 투약자도 검거하니 일석이조 아닌가. 

경찰은 마약 판매책을 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이후에 마약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투약자에게 ‘마약하고 싶죠, 나오세요’라고 하면서 잡아들인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다른 방식의 수사 방식이 있는데 왜 자꾸 이 방식을 고집하느냐는 말이다. 

이 수사 방법이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다. 마약 투약율을 줄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유통되는 마약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약 판매책과 유통책을 잡는 데 온 수사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나는 마약 판매책과 유통책을 잡는 데 수사 시간과 역량을 쏟고, 이들을 통해 투약자를 검거하라고 주장한다. 이 방법이 훨씬 인권침해 소지도 적고 효율적인데 왜 (경찰이) 일반인들의 투약 욕구를 증폭시켜서 (현장에) 나오도록 만드는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사 방식은 어떠한 인권침해적 요소를 갖나.
▲마약 사용자들의 트리거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중독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그것을 돕지 않고 계속 쑤신다. 사람들은 이것이 인권침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또 다른 하나는, 경찰이 함정수사에 마약 혐의로 입건된 사람들을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A라는 사람이 마약 혐의로 입건됐을 때 조사 이후에 수사 기관이 ‘다른 마약 투약자들 검거하는 것 도와줄래? 우리가 너 불기소처분 받도록 도와줄게’라고 제안한다. 이것에 승낙한 사람에게는 휴대전화로 다른 투약자를 현혹하는 함정 수사를 벌여 현장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후 경찰에서는 사실상 경찰이 함정수사를 한 것이지만 A가 투약자를 현혹해 나온 것처럼 조서를 작성한다. 경찰이 투약자를 현혹하는 함정수사를 했을 경우 ‘범의유발형’ 범죄가 돼 (투약자가) 무죄처분을 받을 수 있다. 마약 수사 방식에서 합법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기회제공형’ 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이 직접 투약자를 현혹하지 않은 것처럼 서류를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인권침해 함정수사’다. 

입건된 피의자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다. 나는 (이러한 수사 방식을) 약자의 상태를 활용하는, 지위를 남용한 직권남용 범죄에 해당 가능한 수사라고 본다.

-마약 중독자 중 우울증 환자가 많다고 하지만, 모든 우울증 환자가 마약을 투약하지는 않는다.
▲의학계에서는 마약 중독을 뇌질환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과에서 마약 중독자 상담을 담당하는 것이다. 마약 중독은 의학과 질환의 문제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마약 중독이) 뇌질환이라는 것을 모른다. 

안타깝게도 마약 중독은 치료약이 개발돼 있지 않은 질환이다. 한 번 중독되면 치료약을 먹어도 치료가 안 된다. 도파민에 호르몬 분비 장애가 생긴 것은 아직까지 치료약이 없다. 때문에 한 번 중독되면 치료약이 없는 뇌질환으로 남아 있어 마약 생각이 계속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약 중독자에 대한 재활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하나의 대체 수단은 마약 중독자들로 구성된 이야기모임이다. 이곳에서 소통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개인의 일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사회가 보살펴주는 것이다. 개인의 삶이 망가지지 않도록 일자리 지원, 가정 방문, 무료 소변 검사등 마약 중독자들을 끊임없이 보살펴야 한다. 마약 중독자에게는 이런 것이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사회 복지의 영역에서 마약 중독자를 우리 사회가 계속 관리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에 관한 인식 자체가 없다. 해외에서는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위해 어떤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 많은 취재와 연구가 필요하다. 

-마약사범이라 불린 이들이 사회에 재편입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견해는.
▲나는 당시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한 달여 만에 회사에서 해고됐다. 내가 한겨레를 나와서 다른 신문사나 방송사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마약쟁이’로 다 소문이 난 상황이었는데. 꿈도 못 꾼다. 

그렇다면 전직을 해야 하는데, 나는 11년 동안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고 이 일을 할 때 우리 사회에 훨씬 더 필요한 지적·정보 자원을 생성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후 한겨레 외곽에서 자신의 장점을 잘 발휘해 기자로 남아줬으면 좋겠다는 여러 사람이 발 벗고 나서 후원해 줘 언론매체를 만들었다. 이들 덕분에 내가 무사히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상위 3% 수준이다. 너무 잘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악조건에서도 좋게 회복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마약 범죄자들은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아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교도소를 오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마약 투약 전과가 있어 일련의 활동을 두고 ‘마약 중독자들의 변명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의 보도를 통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 내 보도가 ‘마약 범죄를 용인하자’ ‘마약을 합법화하자’라는 주장이라면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약 중독자를 처벌하는 것도, 마약을 범죄시하는 것도 맞지만 이 사람들의 회복과 관련한 제도들도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사회는 마약 범죄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마약 범죄자는 형사처벌 등 법적 책임은 져야 한다. 하지만 그 뒤의 사회적 회복에 관한 문제는 이와 별개로 보자는 것이다. 또 1인가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갈수록 외로움과 우울증에 관련한 빈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마약 사용자들이 늘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되고 있다.

이들을 계속 마약하게 둘 수는 없다.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 건강한 사회다. 그들이 형사처벌 받는 것엔 이의가 없다.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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