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4.3 재보선을 신호탄으로 정치권의 총선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번 재보선은 총선을 1년 앞두고 영남권 민심을 드러냈다. 여야 어느 쪽에도 정국 주도권을 내주지 않은 1대1 무승부였다. 절묘하게 1석은 얻고 1석은 잃은 결과로 민주당은 희망을 계속 살려나갈 수 있게 된 반면 한국당은 ‘텃밭’ 임에도 노심초사(勞心焦思)를 이어가게 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최근 경쟁적으로 TK·PK 지역 민생 행보를 이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진 정책 교두보 마련을 위한 ‘킹메이커’ 이 대표와 보수 재건의 사명을 짊어진 ‘대권 잠룡’ 황 대표 간 ‘진검승부’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킹메이커’·‘킹’ 꿈꾸는 이해찬·황교안... 경쟁적 ‘민생 행보’ 눈길
- 수도권, 한국당 중심 정계개편 부상… 정작 TK는 ‘시큰둥’

 

4.3 재보선 과정에서 PK 민심 잡기에 올인했던 여야가 이번엔 TK 민심 잡기에 나섰다. 여야 모두 포항 지진 후속대책을 강조하며 내년 총선 표밭을 미리 다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10일 대구에서 현장최고위원회와 예산정책간담회를 열고 대구지역 산업의 발전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與 재보선 후 첫 TK 방문…
등돌린 민심 달래기

이해찬 대표는 이날 대구 한국감정원 본사에서 열린 예산정책간담회에서 “이번 보궐선거에서 보니까 부·울·경(PK) 쪽은 우리 후보가 어느 때보다 득표율이 높았다”며 “그만큼 지역주의가 많이 완화됐다는 것을 뜻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구의 섬유산업이 수출에서 상당히 호조를 보이고 있어 다행인데 섬유사업 자체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대구가 세계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정부도 뒷받침하고 당도 최대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예산정책간담회와 함께 포항 민심을 챙기는 배경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험지인 TK를 미리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4.3 보궐선거를 준비하며 PK에만 몰두했던 터라 행여나 TK를 홀대했다는 여론에 대한 염려라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 내부에선 4.3 재보선에서 상당한 지지층이 이탈한 현실이 확인된 만큼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쉽지 않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라며 “PK와 TK의 정서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영남권 아닌가. PK에서 민심 이탈이 확인된 만큼 TK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당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복귀한 전직 장관들의 21대 총선 역할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부터 이번 개각은 21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출마가 예상되거나 의향이 있는 장관 위주로 교체했다는 점에서 저마다 주요 지역에서 맹활약을 예고한다.

가장 주목을 받는 이들은 김부겸·김영춘 의원의 역할론이다. 이들은 각각 TK·PK를 지역구로 두고 있어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 교두보로 활약을 예고 중이다. 김부겸 의원은 대구 수성갑이 지역구로 내년 민주당 대구·경북 총선을 진두지휘할 사령탑 역할론이 나오고 있다. 김영춘 의원 역시 김부겸 의원과 쌍두마차로 낙동강 전투를 지휘할 장수로 통한다.

김부겸 의원과 김영춘 의원이 ‘최전방 공격수’라면 이해찬 대표는 ‘최후방 수비수’다. 이 대표 역시 지난 1월 13일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 ‘씀터뷰’ 인터뷰에서 “요즘 왜 버럭 하지 않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저는 이제 골키퍼예요. 총리 때는 공격수였지만 지금은 축구장 맨 뒤에 서 있는 골키퍼이기 때문에 ‘버럭’해서는 안 되죠”라며 자신의 역할을 ‘골키퍼’로 규정했다.

과거 선거 땐 직접 적진을 누비고 다녔다면 이번엔 골대 앞에서 경기장 전체를 지켜보면서 공격수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수비수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지휘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지난달 7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최근 청와대에서 당으로 복귀한 인사들과 만찬을 함께 했다. 만찬에는 임 전 실장 외에도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도 등이 참석했다. 이 대표는 이들과 만나 청와대에서의 노고를 의례적으로 격려하는 선을 넘어, 향후 당에서 맡을 구체적인 역할, 총선 예상 출마 지역구 등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최다선 의원이자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꼽힌다. 또 친노 진영의 좌장, 친문 그룹의 맏형으로 현 여권 주류를 아우르고 다독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거기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 대통령의 대선 전략에 깊숙이 관여했던 ‘킹메이커’이기도 하다. 결국 차기 대선에서도 ‘킹메이커’를 꿈꾸는 이해찬 대표에 게 내년 총선 승리는 필수 선결 조건인 셈이다.  

‘첫 시험대’ 통과한 黃
TK·PK ‘텃밭 사수’ 총력

이에 맞서 자유한국당도 영남권 사수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8일 보궐선거를 치른 경남 창원·성산과 통영·고성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후 ‘민생대장정’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곧바로 포항을 찾았다. 

11일에는 텃밭인 부산을 찾아 정권 교체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부산 대평동에서 열린 조선기자재 및 선박수리업체 간담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건의사항을 청취한 뒤 “우리가 집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산 측면에서 직접적인 도움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음 선거에서 꼭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민생 현안에 대한 해결 의지를 보이며 대안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현장에서 찾아내 비판하겠다는 설명이지만 당 안팎에서는 총선용 행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보수의 든든한 텃밭이었다가 더불어민주당에 일부 지역구를 내준 PK 지역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최대 분수령이다. 한국당은 그동안 보수 민심이 흩어져 있었지만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승리 가능성을 엿봤다고 판단하고 있다. PK 지역을 자주 찾는 것은 이런 민심을 다독여 내년 총선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이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다음 대선에서 ‘킹메이커’를 노리고 있다면 황 대표는 직접 ‘킹’이 되고자 한다는 데 정치권의 이견이 없다. 실제로도 황 대표는 최근 한국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6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데일리안의 의뢰로 알앤써치가 지난달 25~26일 조사(1128명 대상,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2.9%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황 대표는 58.0%로 압도적 선두를 달렸다. 2위인 한국당 19대 대선 후보인 홍준표 전 대표(9.8%)보다 6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다만 자유한국당의 내년 총선 승리와, 황 대표의 안정적인 대권 가도를 위해선 필수 선결 조건이 있다. ‘보수 대통합’이 그것이다. 당내에서도 지난 4·3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 ‘504표 차 석패’의 아쉬움에 내년 총선 전까지 보수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황 대표 역시 지난 10일 “변화와 혁신, 그리고 통합의 큰길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압승할 것”이라고 ‘보수대통합’에 군불을 때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보수대통합론은 자유한국당이 바른미래당 보수 성향 의원과 대한애국당을 끌어안는 ‘빅텐트론’과 과거 국민의당에 뿌리를 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의원들이 연대 혹은 통합하는 ‘제3지대론’ 등이다. 

한국당은 지난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504표 차이로 석패하자 ‘바른미래당과 대한애국당의 표를 흡수했으면 한국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 아래 보수통합론, 이른바 ‘빅 텐트론’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당장 가능성이 높은 쪽은 대한애국당과의 통합이다. 원내 의석이 1석이어서 통합 과정이 비교적 수월할 뿐 아니라 황 대표도 애국당과의 합당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 5적(김무성·홍준표·유승민·김성태·권성동) 청산’이라는 애국당의 요구조건이 걸림돌이다. 외연 확장을 위한 통합을 시도하다 도리어 분당 사태를 초래하는, ‘혹 떼러 갔다 혹 붙이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애국당 통합 시 중도 이탈 
유승민계 흡수도 쉽지 않아

바른미래당 내 보수색이 짙은 인사들이 일부 한국당에 흡수되는 ‘중도 확장’ 시나리오도 최근 바른정당계 인사들이 4·3 보궐 참패의 책임을 물어 손학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힘을 받고 있다. 한국당 내에서도 바른미래당 소속 이언주·하태경·유승민 의원을 반기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의원이 최근 “한국당은 변한 게 없다. (한국당과의 통합설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히며 복당설을 일축했으며 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한 바른미래당 내 호남계 인사들의 반발이 극심한 만큼 이 역시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울러 수도권을 중심으로 야당 발 보수대통합이 상당히 제기되는 데 반해 정작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지역은 냉랭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난제다. TK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물론 ‘대의’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지역에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유승민계 의원들과의 통합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TK 바른미래당 역시 시큰둥한 분위기다”라며 “바른미래당도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TK 지역에 가장 많은 당원을 확보하고 있고 지구당 위원장까지 대부분 갖춘 상태다. 보수대통합이 거론될 경우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움직임이나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조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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