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면서 과반의석 이상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과 더불어 치러진 2004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50여석에서 152석을 차지해 여대야소를 만들었다. 당시 초선 의원만 108명이었다. 그런데 집권 중반으로 흐르면서 노 전 대통령 탄핵바람에 당선된 일부 초선 의원들이 당청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정당개혁단장을 맡은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이에 반발해 탈당하면서 “108명의 초선의원들이 팝콘처럼 튄다면 참여정부의 무능함을 넘어 정권교체로 이어져 열린우리당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결과적으로 조 교수의 말은 맞았다. 2007년 치러진 대선에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권교체가 됐기 때문이다.

조 교수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회자된 게 ‘108번뇌. 초선 의원들이 천둥벌거숭이 마냥 튄다고해서 생긴 별칭이다. 다시 10년만에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됐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노 인사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시절처럼 여대야소 정국은 아니지만 그 당시 초선 의원들 상당수가 여전히 민주당에서 뱃지를 달고 있다. 단지 3선 이상 몸집이 커졌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번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청와대발 장관 후보자가 2명이나 낙마했는데도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데도 당내 누구 하나 나서 현 정권에게 쓴소리를 보내는 인사가 없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물러나도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야당에서 죽어있는 정당이라고 지적하면 한국당이나 잘하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누가 야당이고 누가 여당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야당이 여당에게 현 정부를 견제하라는 것은 집권세력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고 국정운영을 하는 집권여당이 청와대와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지적을 해야 하는 데 오히려 감싸기에 급급하다.

이해찬 대표도 최고위원들 누구도 현 정부에 쓴소리를 보내지 않고 있다. ‘쓴소리를 안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가 남북문제, 경제문제, 인사문제, 부동산 문제, 일자리문제에 잘하고 있다면 이해가 된다. 그렇지 않은데 침묵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오히려 여당 인사가 현정부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 친문 진영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입을 막아 버린다.

조국 책임론을 제기했던 조응천 의원이 그렇고 탈원전 정책의 전향적 사고를 주문했던 송영길 의원이 그렇다. 여당에서는 아직 문 대통령의 임기가 상당수 남았고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위해서라도 이해찬 대표와 청와대 눈치를 안볼 수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렇다면 초재선을 제외하고 공천이 사실상 힘든 3선 이상 중진들이 나서서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갈 수 있도록 견제해야 하는데 중진들 역시 침묵하고 있다. 108번뇌라고 조기숙 교수가 지적했던 초선 의원들이 이제 3선 이상이 돼서 늙어버린 탓일까. 몸은 젊은데 정신이 늙어버린 조로증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재 집권여당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크게 3그룹이다. 86운동권 세력, 시민사회 세력, 그리고 친노동계 인사들이다. 이 세 그룹의 공통점은 도덕적 우월감이다. 그런데 도덕적 우월감을 유지하려면 솔선수범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은 현 정부에서 한 자리하고자 솔선수범하는 모습이다. 야당생활하면서 고생했던 것을 자리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일까. 다음 총선은 친문 인사들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필자만 예감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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