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제시한 ‘22주’ 찬반 논란... 주사위는 국회로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1953년 법이 제정된 이래 66년 만이고 지난 2012년 합헌 결정 후 7년 만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정치권은 헌재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종교계는 유감을 표명해 헌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서 바라보는 ‘낙태죄 폐지’ 찬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 사회 향한 새로운 역사의 장 열렸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방어능력 없는 태아의 기본 생명권 부정”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제기한 형법 269조 1항 및 270조 1항 관련 헌법소원 심판에서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지난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임신중절수술을 한 혐의(업무상 승낙 낙태)로 기소되자 1심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2017년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형법 269조 1항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이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같은 법 270조 1항은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약종상이 임신한 여성의 촉탁이나 승낙을 얻어 낙태하게 하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즉시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법적 공백으로 사회적 혼란이 생길 수 있어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것으로, 헌재는 오는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하되 그때까지 현행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헌재 심판에서는 태아의 발달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됐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며 “관련 정보와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낙태를 결정한 경우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필요한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국제 산부인과

학회 간 의견 달라

 

헌재는 여성이 이 같은 결정을 할 시기를 임신 22주로 봤다. 국내 산부인과 학계에서 이 시기부터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헌재가 여성의 결정을 할 시기를 임신 22주로 봤지만 모든 헌법 재판관들이 그렇게 본 것은 아니다. 단순위헌 의견 요지를 내린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할 수 있는 ‘임신 제1삼분기(임신 14주 무렵까지)’를 제시했다. 세 재판관들은 임신 9주 이내엔 약물 낙태도 가능하고, 임신 12~13주에는 수술 방법이 비교적 간단해 합병증이나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산부인과학회(FIGO)에 따르면, 본인의 의사에 맞춰 임신 제1삼분기에 적절히 임신 중절하는 것은 만삭분만보다도 안전하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안전한 낙태’를 위해서도 임신 제1삼분기라는 시기 제한을 두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와 돌봄, 교육·상담 등이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낙태죄에 대한 형법과 특별법 둘 다 두고 있으며 임신 12주 이전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이번 헌재 결정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22주는 너무한다. 태동도 하고 완전 사람이다”, “22주면 거의 5개월 넘고 팔다리 다 있고 기지개도 핀다던데” 등의 의견을 내놨다.

반면 “변화에 축하를”, “원하지 않은 아이를 낳아 무엇 하냐 그 아이의 인생과 그 아이를 낳은 부모마저 불행해지는 것보단 낙태가 답이다” 등의 반대되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헌재가 제시한 ‘14주’나 ‘22주’는 해당 법을 만드는 국회가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국회가 헌재 의견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 입법 과정에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여야, 헌재 의견 ‘존중’

입법 재정비해야

 

여야는 지난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존중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에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절충해 낸 결정으로 평가한다”면서 “헌법재판관들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깊이 존중하며, 국회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법적 공백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히 형법 및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 개정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헌법재판소의 오늘 결정은 시대 변화와 사회 각계의 제 요구들을 검토하여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제 낙태에 관한 입법을 재정비해야 하는 책임이 국회에 주어졌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대변인들도 잇따라 브리핑과 논평을 통해 헌재 결정에 환영과 존중의 뜻을 보였다.

정부도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의 뜻을 같이 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관련 부처가 협력하여 금일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사항에 관한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 대해 정치권에서 오랜만에 한목소리가 나온 가운데 여성계는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종교계는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지난 11일 선고에 앞서 헌재 앞에서 이른 아침부터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리기도 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의견 통합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성평등 사회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며 “여성의 존엄성,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던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들 모두의 승리”라고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헌재의 이번 선고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이다”라고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역시 입장문을 발표해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이 같은 판단을 내렸는데, 인간의 결정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결정에 대해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강력히 규탄하며,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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