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각종 규제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 차기 정권에서 규제가 완화되기를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수익성이 더 악화되기 전에 사업추진 속도를 더 내야 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수 대기자들도 투자시기를 놓고 망설일 수밖에 없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7월27일 ‘사업추진 및 사업시행인가’ 결정을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재건축 사업을 계속 추진할지, 중단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결국 조합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 사업시행인가 신청안건을 통과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일단 움직이자”

조합측은 “재건축 추진 아파트는 집값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재건축 규제를 풀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공감대가 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데다 사업이 지연돼 상당수 조합원의 금융 부담이 커진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락시영 외에도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는 지난 7월24일 정밀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강남구 개포동 주공은 용적률 상향 가능성에 대한 용역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도 최근 강남구청에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이처럼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추진에 고삐를 죄는 것은 사업이 늦어질수록 수익성만 악화될 것이란 공감대가 주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기 때문.


지금 사도 될까

시설은 갈수록 노후화되고 차기 정권에서도 규제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기본적 절차만이라도 미리 서둘러 처리해 놓자는 의도도 깔려 있다. 또 사업추진 단계가 진행되면 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데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호가(呼價) 중심으로 값이 오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

사업추진이 빠른 가락시영 1차 42m²(13평형)의 호가는 5억8000만 원 안팎으로 올해 초에 비해 4000만 원 정도 올랐다. 인근 Y공인 K대표는 “사업추진이 한 단계 나가면서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호가를 올리고 있지만 호가대로 계약하겠다는 매수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재건축에 따른 실익이 크게
없다고 판단한 대기 매수세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42m²를 5억8000만원에 살 경우 취·등록세 등의 거래비용을 합치면 6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입주 때까지의 금융비용과 조합원분담금(1억5000만∼2억원)을 합해 총 8억∼8억5000만원을 들여야 109m²(33평형)를 재건축 이후 받을 수 있다.

8월 안으로 입주할 잠실트리지움의 같은 크기 아파트가 8억원 후반대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역시 82m²(25평형)의 매매호가는 9억7000만∼9억8000만 원이지만 사겠다는 문의가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아파트가 이사철 등의 영향으로 소폭의 변동은 있지만 현 시세가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건축 규제가 여전한 데다 양도소득세 부담 때문에 팔려는 사람이 적어 거래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장기 보유가 ‘해법’될까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부동산컨설팅업체 현도컨설팅의 임달호 사장은 “차기 정권에서도 규제 완화가 힘든 상황에서 강남에 신규 아파트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존 아파트 값
이 오르고, 재건축 단지도 따라가는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일반분양 물량이 적더라도 분양가를 올려 받을 수 있어 수익성이 생긴다는 것도 장기 보유론의 근거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일부 재건축 단지의 사업 속도가 진척된다고 매수자들이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며 “급매물이나 경매를 통해 구입한 뒤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