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제3당은 데자뷰처럼 늘 반복됐지만 확실히 뿌리를 내린 적이 없다. 인물과 지역에 기댄 이합집산적 행태가 강했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2년에 창당한 통일국민당은 14대 총선에서 31명의 당선자를 내는 기염을 토했다. 유권자들이 양김(김대중·김영삼)에 대해 피로감을 느낀데 따른 응분의 성과였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이 대선에서 큰 표 차로 낙선하자 당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어 각자 도생길로 접어들었다.

3당으로 그나마 가장 오래 유지된 정당은 자민련이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김종필 전 총재가 창당해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1여 년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호남에 기반을 둔 1·2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정권 창출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199715대 대선에서 이른바 ‘DJP연합(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일궈내며 공동여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랬던 자민련 역시 지역과 인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새정치를 부르짖으며 혜성같이 등장한 안철수 씨는 대선급 주자가 된 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거대 양당체제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등에 업은 국민의당은 2016 총선에서 녹색바람을 일으키며 38석의 제3당으로 우뚝 섰다. 호남지역에서의 반문재인 정서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처럼 가능성을 보인 국민의당 역시 제3당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안철수 전 대표가 19대 대선에서 떨어지자 당세는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의 새정치는 퇴색됐고 호남정서도 민주당 쪽으로 쏠렸다.

급해진 국민의당은 새누리당(한국당) 탈당파로 구성된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선거에서의 권토중래를 노렸으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광역단체장 0, 기초단체장 0, 광역의원 5, 기초의원 21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공학적 사술에 이념이 다른 사람들로 당을 급조한 데 대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물러나고 손학규 대표 체제로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려 이번 4·3보궐선거 시 오직 창원·성산 지역구 한 곳에 올인했으나 3위를 한 민중당 후보에게도 뒤지는 3.57%의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당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정체불명의 제3지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만이 존재했다.

이 같은 이념 대결 구도는 내년 총선에서도 재현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제3지대 실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언주 의원은 바른미래당으로 내년에 총선 출마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국민들은 정체성이 불분명하면 표를 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바른미래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발전적 해체뿐이다. 마침 진보 쪽 사람들과 보수 쪽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갈라질 수 있게 됐다.

진보 쪽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 문을 두드려 보고 여의치 않으면 민주평화당으로 가면 된다. 아무래도 한솥밥을 먹었던 평화당 쪽이 더 편할 수 있다. 또 한국당을 탈당한 바른정당 출신 사람들은 한국당 복당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당이 받아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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