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박근혜 석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정농단 재판 구속기간 만료를 계기로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에서 박 전 대통령 석방 문제를 공론화했다. 황교안 대표 등 지도부는 물론 비박계도 ‘박근혜 석방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날은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법정구속된 김경수 지사가 보석으로 풀려난 날이다. ‘절묘한 타이밍’·‘환상의 호흡’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을 가장 예의 주시하는 인물이 있다. 25일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로 상고심 선고가 예상되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다. 박 전 대통령 석방 여부는 곧 이 부회장 상고심 선고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기 때문.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운명 공동체’의 앞날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석방 여부 결정 권한, 사법부에서 행정부로... 결국 文의 손에 달렸다 
- 朴 탄핵 주역 김무성 “탄핵 주장했지, 처벌 주장한 적 없다” 속내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결수로 신분이 전환된 첫날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확정된 형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내용의 신청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 건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약 2년 만이다.

한국당 ‘朴 석방’ 군불, 
‘법률 사안→정치 사안’ 

유영하 변호사는 형 집행정지 신청서를 통해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며 “불에 데인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신청 날짜다. 지난 17일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보석 신청에 대한 법원의 허가가 나온 날짜와 겹친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 지사는 구속된 지 77일 만에 풀려났다. 반면 전직 대통령은 2년이 넘게 구속 수감 중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런 상황에서 형 집행정지 카드를 꺼냈다.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역시 이 점을 파고들었다. 황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어제 김경수 도지사가 보석으로 석방됐는데 ‘친문 무죄 반문 유죄’, 이런 이 정권의 사법 방정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증거 인멸 능력도 도주 우려도 없는 지난 정권 사람들은, 아무리 고령에 질병이 있어도 감옥에 가둬놓고선 살아있는 권력에는 어떻게 이렇게 너그러울 수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대표가 지목한 ‘고령·질병이 있는 지난 정권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을 지칭한 것이라는 데는 정치권에 이견이 없다. 

이렇듯 김 지사가 보석으로 풀려난 시점에 유 변호사가 형 집행정지 신청을 내고,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힘을 보태자 한국당 내에선 ‘박근혜 석방론’이 급속히 번지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동했던 비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도 가세할 정도다. 

김 의원은 지난 18일 오전 국회에서 MBC 취재진과 만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석방됐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석방됐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부정한 일을 한 일이 없는데도 구속기간이 너무 긴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얼마든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데 건강이 안 좋은 직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고생시키는 것은 잘못한 것이고, 형 집행정지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2월 14일 라디오에서 2016년 탄핵 소추 정국 때 김 의원이 자신의 요청을 받고 탄핵 찬성파 의원 40명을 규합해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박 의원은 “민주당 우상호, 정의당 고(故) 노회찬, 그리고 국민의당 나 세 사람이 뭉쳐서 새누리당 격파 작전을 만들자고 했다”라며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만나 ‘(탄핵 가결을 위해) 20표가 필요하다. 그래서 안전하게 40표를 달라’고 했더니 (김 전 대표가) ‘형님, 40표가 됐다’고 해서 (탄핵소추 표결 추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주역’(?)인 김 의원까지 지난 18일 “탄핵을 주장했었지, 박 전 대통령을 처벌하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며 “너무 가혹하다고 본다”고 힘을 보탠 것이다. 

朴 석방 현실성?
“기각돼도 지지층 결집”

다만 한국당이 모처럼 한 목소리로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고 나섰음에도 실제로 형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형사소송법 471조에 따르면 ▲심신 장애로 의사능력이 없는 때 ▲중병에 걸려 형의 집행이 어려울 때 ▲임신 6개월 이상인 때 ▲70세 이상일 때 등의 경우에 한해 형의 집행 정지가 가능하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대부분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에 건강상 이유로 형 집행이 정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실형이 확정되긴 했지만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뇌물죄 등 국정농단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아 상고심이 진행 중이고, 1심에서 징역 6년을 받은 국정원 특활비 관련 사건도 다음 달부터 2심이 시작된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형 집행정지는 다른 사건이 계류돼 있지 않고 그 사건에서만 형이 집행될 때 해주는 것”이라며 “다른 중요 재판들이 이어지고 있을 때는 풀어주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 측이 형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한국당 특히 비박계까지 ‘박근혜 석방론’에 군불을 때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란 추론에 힘이 실린다. 정치적 노림수가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석방 여론을 계기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것.

지금까지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17일부터 영장 기한이 만료됐지만 공직선거법 확정판결에 따른 징역 2년의 실형이 집행되는 기결수 신분으로 수용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의 석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이날 부로 법원에서 행정부로 넘어온 점을 이용해 정부를 압박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형집행정지를 거부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친박이라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잇달아 보석으로 석방된 만큼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게 됐다.

실제로 홍문종 한국당 의원은 연석회의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보수 대통합을 운운하는데 (박 전 대통령 석방론에) 한국당이 가만히 있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고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때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이슈는 당권 주자들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이용됐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다시 여의도로 돌아가면 이명박·박근혜 두 분 전직 대통령 석방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면서 국민 저항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초선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때 (당내 경선에) 늦게 뛰어들어 지금처럼 자격 시비가 있었는데 당시 대표이던 박 전 대통령이 제가 들어가야 전당대회 주목을 받는다고 후보들을 설득해 참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 전 시장은 “선거운동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테러가 있었다”라며 “정말 두고 갚아야 할 신세라고 생각한다”고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4월 25일, 이재용 상고심...
文 정부 통 큰 결단?

한편 박 전 대통령 석방 여부를 가장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월 11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이 부회장에 대한 심리가 상당 부분 진척돼 4~5월 중으로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 2, 3차 심리 과정에서 대부분의 쟁점 정리가 끝난 상황”이라며 “오는 25일 이들에 대한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앞서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 씨가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원,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의 뇌물을 공여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세 사람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 작업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묵시적 청탁이 존재할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준 돈 모두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해 이 부회장의 ‘묵시적 청탁’이 존재했다고 봤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된 16억 원을 뇌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듯 국정농단 상고심의 하이라이트는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청와대에 ‘묵시적 청탁’을 했느냐 여부다. 같은 사안에 대한 1심·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리고, 비슷한 시기 선고가 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가 엇갈린 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앞두고 있다.

결국 박 전 대통령 석방 여부는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법조계 인사는 “현 정부가 통 크게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박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석방될 경우, 보수진영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고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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