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건 부교수

지난 여름의 대한민국은 참으로 더웠다. 수은주가 섭씨 40도를 돌파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시민들은 정상적인 야외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불편을 겪었다. 정부에서는 이를 재난 수준의 폭염으로 규정하며 전력 수요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111년 만의 폭염에 가정용 전기사용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8년 여름 온열질환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48 명으로 집계되었는데, 또 다른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던 1994년에 3,384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에어컨 등의 냉방기기가 널리 보급되었고, 그리고 이를 가동하기 위한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때 냉방기기 사용량의 급증으로 각 가정의 전기요금이 크게 상승할 것이 우려되자, 누진제를 폐지하여 전기요금을 인하해 달라는 청원이 봇물터지듯 쏟아졌다. 재화를 소모한 만큼 요금체계에 따라 사용료를 납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전기 사용량이 적은 계절에는 도리어 전기료가 높아질 수 있기에 필자는 이러한 청원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저렴한 전기요금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일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도 누진제 구간을 한시적으로 늘려 가구당 전기요금을 평균 1만 원 가량이나마 인하하기로 한 것은 전기료가 가계에 큰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제주의 전력수급 현황은 국내의 에너지 정책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제주는 2030년까지 도내의 전력을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비전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풍력 및 태양광 설비를 빠르게 확충하면서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2012116 MW에서 2018457 MW로 급증하였다. 2017년에는 전체 발전량의 13%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등 내륙부의 운영 실적을 크게 웃돌고 있다. 발전과 수송 부문에서 탄소의 배출을 저감하기 위한 제주의 선도적인 노력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2월 제주발전본부에 최초로 LNG 복합화력발전소가 준공되었고, 남제주발전본부에 또 다른 LNG 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이들 LNG 발전소의 도입은 2006년 제주에서 광역 정전사태가 발생한 이후, 전기사용량이 급증할 때의 전력수급 불균형에서 벗어나 도내 전력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추진되었다.

지속적인 인구 유입 등으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를 온전히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 어렵고,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의 간헐적인 전력생산을 보완할 전력원이 필요한 까닭이다. 2016년 최대전력 발생 시 신재생에너지의 공급능력이 전체의 1.8%, 2017년에는 8.3%에 불과하였다는 점은 전력사용량에 대응하여 발전량을 조절할 수 없는 데에 따른 어려움을 보여준다.

저렴하게 안정적인 기저부하를 공급하던 원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의 설비용량 비중을 33.7%로 늘린다는 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이행하게 되면, 국내 전체 전력시장에서도 같은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의 증대분 만큼 기존 발전원의 비중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인 전력생산에 대응하기 위한 LNG 발전의 비중이 커져야한다. 원자력 대비 LNG 발전의 발전원가는 2, 신재생에너지는 3배 이상 비싸다. 저렴한 발전원의 비중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비싼 에너지의 비중이 커지면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또 다른 눈여겨 볼 부분은 제주의 전력자립율이다. 제주는 2019년 기준 1,153 MW의 공급용량 중 400 MW를 내륙과 제주를 잇는 해저송전선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35% 가량의 전력 공급을 내륙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제주에서 전력 수급을 자립하지 않더라도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데에 큰 기여를 한다.

그러나 국내의 전체 전력망은 다른 나라와 연계되어 있지 않은 고립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체 에너지의 95%를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사장시켜도 좋을 만큼 전력수급 여건이 녹록한 환경은 아니다.

국민들이 특정 발전원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감내할 용의가 있는 비용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전기요금의 인상에 예상되는 탈원전 정책은 그에 따른 영향을 상세히 알리고,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70%가 원전의 유지 · 확대에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차적 과정이 생략되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는 공생해야 할 파트너이지, 어느 하나의 전원을 확충하기 위해 다른 전원은 모두 점진적으로 폐쇄해야 한다는 파괴적인 접근은 결국 서민들의 부담을 증가시킬 뿐이다. 탈핵단체들이 교과서처럼 신재생에너지 보급의 선도 국가로 언급하는 독일에서는 가정용 전기요금이 우리나라의 3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은 탈원전을 위해 얼마만큼의 비용을 부담할 감내할 용의가 있을까? 적어도 지난 여름의 청원을 보노라면,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우려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원전은 여전히, 서민들에게 전력 복지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연건 제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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