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겨

지난 3월 국내 면세점 매출이 처음으로 2조 원을 돌파하며 3개월 연속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가운데 지난 16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면세점 입구에서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매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월 국내 면세점 매출이 처음으로 2조 원을 돌파하며 3개월 연속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가운데 지난 16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면세점 입구에서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매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왕서방(중국계 투기 자본)’을 모시기 위한 롯데·신라·신세계면세점의 경쟁이 뜨겁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판매액의 30%가량의 수수료를 중국 여행업체에 제공하고 있다.

업계는 그동안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 단체 관광객의 한국 방문 제한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면세업계의 과열 경쟁으로 국내 면세업계 전체가 손해를 보고 결국 국부가 중국으로 유출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면세점, 판매액 30% 중국 여행업자·보따리상에게 지급
“매출 부진 메우기 위한 자구책”…궁색한 해명 빈축

국내 면세업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2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실속은 중국이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업계 매출은 9조1983억 원으로 이 중 외국인이 올린 매출은 6조 1000억 원(66.5%)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5조 원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의 1인당 평균 소비액은 2200달러였다.

이 가운데 면세업계는 큰손인 중국 보따리상을 유치하기 위해 판매액의 30%가량을 수수료로 중국 여행업체 등에 지급하고 있다. 지난 16일부터는 롯데·신라·신세계면세점 등 주요 3사는 중국인 보따리상에게 제공하는 선불카드 혜택을 경쟁적으로 확대했다. 결국 송객 수수료(20%)에 선불카드까지 포함하면 구매액의 30%가 중국인에게 다시 흘러나가는 셈이다.

업계는 “이 같은 출혈 마케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안 그래도 1조 원 이상을 여행사 송객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불카드 혜택까지 확대한다면 지나친 보따리상 중심의 왜곡된 면세시장 구조를 더욱 공고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면세업계 내부에서도 면세점의 수익성 악화는 사드 영향과 중국 보따리상인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기업형 보따리상은 개별 보따리상 및 여행객을 여행사를 통해 모객한 다음 면세점에서 상품을 대량 구매하고 면세점은 매출에 대한 송객수수료를 여행상에 지급한다.

또 여행사는 다시 기업형 보따리상에게게 일정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송객수수료를 되돌려준다. 결론적으로 면세점에서 할인을 받고 중국에서 온·오프라인 판매로 마진을 남길 경우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형 보따리상의 면세점 쇼핑 패턴은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과거 중국인들은 한국 관광에 앞서 화장품 등 쇼핑을 목적으로 왔는데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 제품을 싼값에 대리 구매하고 관광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보따리상들은 한국에 들어와 관광은커녕 하루 종일 쇼핑을 하고 싼 호텔에서 쪽잠을 잔 후 돌아가고 있다. 사드 형국에서 이득을 챙긴 것은 결국 왕서방 보따리상들인 것이다.

면세업계의 보따리상 유치 경쟁의 신호탄은 지난해 국내 시장 점유율 40%가 처음으로 무너진 업계 1위 롯데면세점에서 쏘아 올렸다.

선불카드 혜택도 대폭 강화 

지난해 연말 취임한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는 잃어버린 시장점유율 회복을 지시했고, 이에 롯데면세점 지난달 20일부터 월드타워점에서 수입화장품 구매 시 구매 금액의 10%를 선불카드로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 중이다. 500달러 이상 구매 시 5만 원, 800달러 이상 구매 시 8만 원 등을 선불카드로 제공한다. 통상 구매 금액의 5% 수준이었던 선불카드 혜택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롯데의 공세에 2∼3위 업체인 신라와 신세계면세점도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불카드 행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신라면세점 서울점은 지난 4일부터 화장품과 패션을 구매하는 외국인 고객에게 1000달러 이상 구매 시 8만 원, 1500달러 이상 구매 시 15만 원, 2000달러 이상 구매 시 20만 원을 지원한다. 구매 금액별로 각각 베이커리 브랜드 아티제 상품권 3만 원, 호텔 숙박권 등을 추가 지급한다.

신세계면제점도 지난 5일부터 선불카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1000달러 이상 구매 시 8만 원, 1500달러 이상 17만 원 등의 선불카드를 지원한다. 구매 금액이 높을수록 높은 선불카드를 지급 중이다. 선불카드는 결제 후 인증 과정까지 거쳐야 하는 여행사수수료와 달리 바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어 보따리상에게 큰 인기다.

일요서울은 지난 16일 명동 남대문시장 일대와 신세계면세점, 롯데면세점을 찾았다. 단체로 온 중국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이 사라졌다고했지만 이곳 상인들은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고 했다.

한 상인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중국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보따리상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이 상점을 한 시간가량 지켜봤다. 국내 손님보다 중국인 손님이 이 곳을 찾는 횟수가 더 많았다.

발길을 면세점으로 돌려봤다. 롯데면세점은 이미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면세점이 제공하는 가방이 아닌 큰 캐리어 또는 대규모 보따리였다.

출혈 경쟁에 발목 잡힌다 ‘우려’       

업계는 중국 관광객 또는 보따리상을  잡기 위한 출혈경쟁이 심해질수록 그 피해는 업계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며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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