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더불어민주당의 원혜영 의원이 최근 무더기로 법안을 발의해 여당 내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원 의원의 경우 20대 총선 이후 대표 발의한 법률안 건수가 총 50건(2019년 4월19일 현재)인데 그중 16개 법안이 하루 만에 국회사무처에 제출됐기 때문이다. 통상 여당 중진급 의원들과 비교해 상당히 이례적이다. 특히 당내 공천기획단이 의정활동이 미진한 현역 의원들에게 공천 심사과정과 경선에서 모두 20% 감점을 주기로 해 원 의원이 ‘현역 중진 물갈이론’에 대비해 ‘벼락치기’로 법률안을 발의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뉴시스

- 21대 공천 앞두고 ‘중진물갈이’에 대비 ‘무더기’ 법안 내
- 공천기획단 ‘의정활동’ 미진 현역 공천과정 20% 감산 결정에 ‘벼락치기’?

국회사무처(사무총장 유인태)는 지난 4월 15일 2019년 4월 둘째 주(4.8∼ 4.12)에 총 134건의 의안이 접수되었다고 밝혔다. 의안 종류별로 구분하면, 법률안 133건(의원발의 132건, 정부제출 1건), 결의안 1건이다.

그런데 133건 의원 발의 중 눈에 띄는 인사가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이다. 부천시 오정구가 지역구인 원 의원은 5선의 중진의원이다. 그런데 원 의원은 4월 8일 자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원혜영의원 등 10인)을 비롯해 15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 상당 ‘보건복지위’관련...본인은 ‘외통위’ 소속

의안을 자세히 보면 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평생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유아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사회보장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방위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원 의원의 상임위는 외교통일위원회다. 법안 중 원 의원의 상임위와 관련 있는 법안은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정도다. 16개 법률안 중 보건복지위 관련 법안들이 다수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으로 오해 받을 만하다. 또한 300명의 의원 중 133건이 발의됐는데 그중 16건이 한 의원이 낸 것은 국회의원이 아무리 입법기관으로서 법안 발의가 의무라 해도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외통위는 여야 중진급 의원들이 쉬어가는 상임위로 ‘원로원’으로 불릴 만큼 4선 이상급 의원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7선의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6선의 천정배, 이석현, 김무성 5선의 추미애, 정병국 박병석 의원 등이 위원으로 있어 3선 이하 의원들은 명함도 내밀기 힘든 상임위다.

그렇다고 원 의원이 2016년 20대 총선에 당선된 이후 법률안 발의를 꾸준하게 해 온 것도 아니다. 본지가 4월 19일자로 국회사무처 의안과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16개 법안을 제외하고 대표발의한 법률안이 총 34건이다. 16개 안을 포함하면 총 50건이 된다.

그중에서 44건이 계류 중이고 본회의 가결돼 공포된 법안은 2건이다. 대안이 반영돼 폐기된 법안은 4건이다. 대안 반영 폐기란 원안을 폐기하지만, 원안의 전부 혹은 일부가 담긴 대안으로 대신 반영하는 법안 심사 절차다. 유사한 법률안이 여러 개 발의될 경우도 해당된다.

결국 대표발의한 법안 중 실제로 현실에 적용된 법안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다다. 그것도 새로운 법안을 만든 게 아니라 기존 법안을 일부 개정한 법안이다.

원 의원이 이처럼 무리하게 ‘벼락치기’ 법안을 낸 배경은 내년 총선과 무관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내년 총선 공천 기준안을 발표했다. 총선공천제도기획단의 안의 특징은 현역 의원 기득권 축소다.

민주당 내 128명 현역 의원이 총선에 나설 경우 당내 경선 즉 예선전을 치러야 한다. 또한 현역의원을 대상으로 한 ‘선출직 공직자 평가’에서 하위 20%를 받은 의원들은 20% 감산을 받는다. 반면 정치 신인은 기존 경선과정에서 적용하던 10% 가산에 더해 공천심사 과정에서도 10% 가산을 주기로 했다.

결국 의정활동 등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현역 의원들은 20% 감점에서 정치 신인은 가산점을 받고 공천경쟁을 벌이는 불리한 상황이 연출된다.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특히 수도권 출신 3선 이상 중진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정활동, 지역구 활동에 대한 현역의원에 대한 선출직 공직자 평가는 4년 임기 동안 두 차례 실시한다. 중앙당은 이미 올해 1월 초에 한 차례 평가를 마쳤고. 나머지 한번은 선거 개시일 6개월 전인 올해 10월경에 한다.

통상 국회 의원들은 선수가 올라갈수록 입법 활동이나 상임위 활동, 지역구 활동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초·재선이 할 수 없는 3·4선 이상 중진들에게 맡겨진 중앙무대에서 정치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량적으로 평가를 할 경우 의정활동 점수는 낮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 출신 중진의원, “하위 20%를 탈출하라”

게다가 수도권은 지역마다 쟁쟁한 당내 경쟁자가 넘치는 곳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자나 장차관들, 공공기관 수장등 정치 신인들 다수가 수도권에 포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중진의원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경우 원 의원처럼 3선 이상 중진에 수도권 출신 의원들은 상당수다. 민주당 전체 의원 128명 중 61%에 해당하는 79명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 포진해 있다. 그중 3선 이상 38명의 의원 중 다수가 수도권이다.

6선의 정세균, 이석현 의원은 종로와 안양이 지역구다. 5선의 박병석, 원혜영, 이종걸, 추미애 의원 중 대전이 지역구인 박 의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수도권 출신이다. 4선 13명 중에서도 김진표, 박영선, 설훈, 송영길, 안민석, 조정식, 진영, 최재성 의원이 수도권이다. 3선 18명 중 전북 익산 이춘석 의원을 제외하고 17명이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세대교체’ 바람에 수도권 출신 ‘중진 물갈이론’이 현실화될 공산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결국 원 의원이 뒤늦게나마 ‘무더기 법안’을 발의, 9명의 동료의원들로부터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법안을 무리하게 낸 배경이다. 가을에 실시될 선출직 평가를 1차로 대비해 예선전에서 일단 하위 20%에서 탈출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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