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의원은 풀무원 창업자로 유명하지만, 전 재산을 기부하는 무욕의 정치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아는 몇 안되는 괜찮은 정치인 중 한명이다. 약육강식의 냉엄한 정치권에 있으면서 대한민국 반부패 청렴대상을 받았고 백봉 신사상도 두 차례나 수상했다.

이력도 화려하다. 두 번에 걸친 민선 부천시장을 지냈고 20대 총선에서 당선돼 5선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지 30년이 다 돼가지만 의리의 정치인으로도 통한다. 1995년 정치무대로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민주당 계파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도 꼬마 민주당에 잔류한 뚝심의 정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DJ 정계복귀를 비판하고 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해 만든 모임인 국민통합추진회의(이하 통추)의 회원이기도 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 유인태 사무총장, 이철, 박계동, 김정길, 김원웅 등이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그런 원 의원이 최근 하루에 법안 16개를 발의해 동료의원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10인 이상 국회의원들의 서면 동의만 있으면 대표 발의를 할 수 있는데 16개 법안에 서명한 의원 10인이 모두 동일 인물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 할 경우 품앗이식으로 서명을 해주는 게 의원실간 관행이기도 하지만 이정도면 도가 지나치다. 원 의원을 제외한 9명의 의원이 16개 법안에 대해 제대로 검토과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16번 서명을 한 셈이 된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법안을 내는 거야 당연하지만 하루에 16개 법안을 벼락치기식으로 제출한 것은 무엇보다 그 정치인이 원혜영 의원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원 의원 입장에서 보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앙당에서 현역 정치인들의 의정활동 평가가 낮게 나올 경우 공천과정에서 낙천될 수 있어 이제라도 법안을 낸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의할 수 있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원 의원은 당초 내년 총선에 출마할 뜻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으로 입각설이 그럴듯하게 돌기도 했다.

하지만 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에서 출마로 가닥을 잡으면서 진영 의원이 행안부 장관으로 가게 됐다. 당초 청와대의 입각 발표 시기가 예상보다 미뤄진 배경 역시 원 의원 때문 아니냐는 시각도 당안팎에 존재했다.

특히 원 의원이 출마로 선회한 이유가 통추 선배들이 당내 국회의장 인물부재론을 들어 내년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아야 한다고 설득한 게 결정적으로 알려졌다. 물론 본인 역시 출마에 대한 욕심도 한몫했으리라. 그런 연장선상에서 원 의원은 그의 명성과 성품과 다르게 무더기 법안을 내는 무리수를 기획한 셈이다.

그러나 필자는 국회의원이 다른 것도 아닌 법을 가지고 무더기로 낸 점은 못내 아쉽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현 여당이 원내 1당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국회의장직은 원내 1당에서 배출된다.

오히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승리하려면 세대교체를 위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여당에서 그 대상은 원 의원처럼 수도권 다선의원들이 될 공산이 높다. 그런데 원 의원이 오히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세대교체 바람에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씁쓸함이 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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