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해월이는 사랑하는 정인이 다시 환로에서 물러나 칩거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고려의 운명 아니던가. 잠시 서먹하던 분위기을 바꾸기 위해 해월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대감, 왕기 대군을 만나시면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의지를 가지시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세요. 대군께서 임금이 되려면 야심을 감추고 기황후와 손을 잡는 수밖에 없어요.”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말이었다.
“내 관장 말씀을 그대로 왕기 대군께 전하지.”
이제현은 어느덧 경륜지사(經綸之士)가 되어 있는 해월이의 혜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를 닮은 까닭인가. 나를 앞서고 있으니…….’ 

왕위 경쟁에서 탈락한 왕기(공민왕)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다

고려 신민(臣民)들의 여망을 저버린 왕기 대군의 책봉 탈락에 대해 하늘도 분노했을까. 밤새도록 우르릉 쾅 하는 벼락과 천둥 번개가 쉬지 않고 무섭게 몰아쳤다. 그 탓이었을까. 이제현은 왕기 대군의 영혼이 가여워서 한 숨도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전전반측하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번개가 쳐서 세상이 환해지는 꿈’을 꾸었다. 
이제현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초여름 햇살이 만권당 마당의 장독대 위로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 하늘은 녹청색으로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어원에서 퍼져나오는 상큼한 초여름 냄새가 싱그러웠다. 이제현은 간밤의 꿈을 해몽(解夢)해 보았다.
‘거참 묘한 일도 다 있지. 천둥·번개는 하늘의 노여움과 징벌의지를 상징하는데…… 그렇다면 왕저의 앞날도 충목왕처럼 암운(暗雲)이 드리운단 말인가…….’
이제현은 해월이가 제시해 준 현실적인 문제 해법을 생각하며 왕기가 숙위(宿衛)하고 있는 거소를 찾아갔다. 왕기는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부스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풀죽은 모습이 역력한 왕기가 이제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익재 대감, 어서 오세요.”
“대군, 신이 못난 죄로 대군께서 두 번씩이나 보위에 오르시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니에요. 다 나의 운명인걸요. 대감께서 애쓰신 노고는 내가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간밤에 신이 번개가 쳐서 세상이 환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는 막혔던 일이 서서히 풀리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징조처럼 보입니다.”
“…….”
“이번 일로 대군께서는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끼셨을 것이나, 절대로 실망하시거나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듭니다. 시련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면 반드시 뜻을 이루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또한 원나라 조정에 불평불만을 내비쳐서는 더욱 안 됩니다. 고려의 억조창생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예…….” 
“그리고 신의 생각으로는 대군께서 원나라에 머물러 숙위를 계속하시면서 기황후와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단본당(端本堂, 황태자 아유시리다라를 위해 건립)에서 황태자를 시종(侍從)하실 수 있다면 기황후를 비롯한 기씨 일파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향후 대군께서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기황후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까닭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마로서의 굳건한 지위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좋은 혼처를 정해 결혼하시는 것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예…….” 
이제현의 경륜과 내공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듣고 난 왕기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왕기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이제현의 혜안이 왕위에 대한 집념을 다시 불태울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왕기는 어느덧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하늘의 먹구름이 다 걷히고 밝은 햇살이 폐부 깊숙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음을 느꼈다. 
좌절의 고통을 인내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왕기는 이제현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왕기는 기황후에게 인사하기 위해 황궁의 내전으로 들었다. 환관 박불화(朴不花)가 왕기를 반갑게 맞이하여 기황후에게 안내했다. 기황후는 칠보로 단장된 의자에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왕기는 공손히 절하고 하례를 드렸다.
“황후마마, 그동안 옥체 강령하셨는지요.”
기황후는 당당하고도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로 답했다. 
“어서 오세요. 대군.” 
기황후는 최고 권력자인 태황태후와 이전의 황태자를 밀어낸 야심만만하고 의지가 강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독심술로 남의 속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왕기는 자신이 고려 왕위에 더 이상 야심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태연하게 행동했다.
“황후마마, 저는 앞으로 연경에서 시나 쓰고 그림이나 그리면서 충선왕 할아버지처럼 여원(麗元) 문화교류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잘 생각했어요.”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요.”
의심이 많은 기황후였지만 두 차례나 왕위 경쟁에서 패배한 왕기가 한편으로는 가엾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충정왕의 연치가 어려 왕기가 향후 왕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그녀는 왕기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리하여 기황후는 왕기의 배필이 될 처녀를 추천하였다. 
충정왕 원년(1349년) 10월. 왕기는 연경 황궁 북정(北庭)에서 원나라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녀의 이름은 보탑실리(寶塔實里)이고 고려식 이름은 공민왕의 성을 따라 왕가진(王佳珍)이다. 왕기는 고려왕이 되기 위해 정략결혼을 한 것이다.


벗들과의 사별, 
그리고 꺼지지 않는 개혁의지

기축년(1349, 충정왕1) 새해가 밝았다. 
14세기 유럽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페스트)과 비슷한 역병(疫病)이 원나라 전역에 창궐했다. 연이어 폭우가 20일 동안이나 퍼붓듯이 내려 황하의 물이 크게 불어나 평지의 수심이 6미터나 차올라 백모구의 제방이 붕괴되었다. 또한 지진 등 천재지변의 대재앙이 대륙을 강타하여 원나라 각지는 ‘지옥촌(地獄村)’으로 바뀌고 말았다. 건물에 깔린 백성들의 비명과 신음, 홍수에 떠내려가는 가축, 역병으로 거리에 널려 있는 주검은 목불인견이었다. 신이 내린 저주인가, ‘말세지말(末世之末)’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는 원나라 조정의 권력자들은 흉흉한 민심을 위무할 계책을 내놓지 못했다. 도리어 재난을 구하기 위해 동원된 인부들에게 돌아갈 임금을 중간 관리들이 횡령하자 인부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이에 원나라의 차별정책 아래 놓였던 옛 남송인들과 경제적 착취에 신음하던 농민들의 불만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리하여 대륙은 급속히 황폐화되었고, 한족들의 반원 움직임은 요원의 불길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백련교(白蓮敎)의 등장이다. 마치 1100년 전 후한을 몰락에 빠뜨린 황건적(黃巾賊)의 봉기처럼.

고려의 사정도 원나라와 별로 다름이 없었다. 
고려의 집권 세력인 권문세족들은 원나라에 기대어 왕의 권한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며 ‘그들만의 나라’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국제정세 변화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권문세족들은 정치적으로는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여 귀족 연합적인 정치를 운영함으로써 왕권을 약화시키고 고위관직을 독점하고 자기들끼리 혼맥을 맺었다. 경제적으로는 노비 소유와 산과 강을 경계로 삼는 토지 소유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국가재정 기반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제현은 연초부터 원나라와 개경을 오가는 상단으로부터 중국 전역에 역병이 도져 민심이 흉흉하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7월 어느 날. 
여름 장마가 끝난 자리에는 불볕기둥이 차지했다. 이제현은 더위와 근심 속에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부쩍 많아졌다. 간밤에는 꿈자리까지 뒤숭숭하여 전전반측하였다. 그리하여 한낮에 죽부인(竹夫人)을 품에 안고 정원 느티나무 아래서 삼복더위를 식히고 있다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문득 잠이 들었다.

문경지교 판삼사사 박충좌의 타계

이때 찬성사 이곡이 이제현의 수철동 집을 찾았다.
“스승님, 안에 계시옵니까?”
잠결 속에서도 이제현은 이곡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냈다. 
“가정(稼亭), 어서 들어오게나.”
“함양부원군 박충좌 대감댁에서 전갈이 왔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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