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교수
정재준 교수

스웨덴의 한스 롤링스 박사는 통계학 분야의 석학이자 의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2017년에 작고하기까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키우고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저서 “사실성(Factfulness, 2017)”은 전 세계의 일반적인 현황에 관한 질문 13개로 시작된다.


첫 번 째 질문을 보자. “1.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셋 중에서 고르도록 했다: A. 20%, B. 40%, C. 60%. 이어서 알듯 말듯 한 질문 11개가 더 나온다. 맨 마지막 문제는 비교적 쉽다. “13. 세계 기후전문가들이 앞으로 100년 동안의 평균기온 변화를 어떻게 예상할까? A. 더 더워진다, B. 변함없다, C. 더 추워진다”. 2017년에 14개국 12,000 여명에게 이 질문을 던진 결과, 13번 문제를 제외한 열두 문제에서 정답을 맞힌 경우는 평균 두 개로 나타났다.

침팬지에게 골라보라 하면 열두 개중 네 개는 맞힐 텐데 이 보다 못하다. 이런 수준의 지식으로는 세상을 발전시킬 수 없기에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설파한 것이다. 문제를 모르면서 좋은 답을 낼 수 없다는 말이다.
모든 의사결정에서 “사실(Fact)”이 중요하다. 그런데, 부분적인 사실만을 침소봉대하면 더 큰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논쟁과 의사결정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며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그런데, 사실 조차 왜곡되거나 터무니 없는 내용이 사실인양 유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롤링스 박사가 원자력에 관한 질문을 열두 개 만들었다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다른 책을 또 하나 쓰는 계가가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도쿄가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되어 죽음의 도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있다.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방사성 세슘은 과거 대기중 핵실험이나 원전사고에서 방출되어 세계 어디에나 극 미량이 존재하는데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방사선 측정기로 이 주장의 진위를 가릴 수 있다. 1300 만 명이 넘는 도쿄 주민 중에 어느 한 사람이나 관련 기관이 측정해보면 알 수 있고 그 결과는 일본 정부가 은폐할 수 있는 사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릇된 주장이 그럴싸한 지식으로 포장되고 널리 퍼져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2018년 부산의 모 대학 교수들이 단체로 큐슈를 방문하면서 만약 도쿄가 목적지였다면 상당수가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도쿄가 후쿠시마에 가깝기 때문이라 했다. 지구 어디에도 자연방사선이 늘 존재한다. 도쿄나 큐슈 지역의 환경 방사선은 서울이나 부산 지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만약 미량의 방사선이라도 위험하다면 도쿄나 큐슈 보다 서울과 부산이 더 위험한 셈이다.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18년 부산시 의회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역을 방문하면서 방사선 피해를 우려하여 방문 지역을 후쿠시마 원전에서 60km까지로 한정했다고 한다. 기장군의 해수담수화 수돗물공급 시설은 1950억원을 들여 건설했고 430 여 차례 수질 검사를 통과했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을 넘지 못해 최근 공업용수용으로 전용하기로 했다. 이런 일들도 “종합적인 사실에 기반한 의사결정”으로 보기 어렵다.

그릇된 지식이 난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롤링스 박사 의견처럼 무지, 무관심, 지식의 구조적 왜곡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잘못된 지식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주장이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날조하는 경우도 있다. 원자력과 관련된 그릇된 지식이 난무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방사선은 사람의 오감으로 지각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두렵게 느껴지고, 이러한 공포의 틈새로 엄청난 과장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본질적으로 알기 어려운 요소도 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씩 1년간 피운 경우 수명단축 기간에 얼마가 될지 알기 어렵듯이 방사선에 얼마만큼 쪼였을 때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 알기 어렵다. 당연히 억측이 개입될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희생자 수가 적게는 30 여명에서 많게는 수 십 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희생자의 정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오차 범위이다. 여기에는 이해관계에 따른 과장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공정하게 팩트 체크하면 오차범위를 대폭 줄여서 “사실”을 공유할 수 있다.

2017년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을 돌아보면 사실에 근거한 열린 토론의 의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목적에도 없는 ‘원전축소’ 권고를 슬쩍 끼워 넣은 것은 중대한 결함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권고사항을 근거로 국민적 논의과정 없이 탈원전을 포함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탈원전을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첫 걸음이라는 주장이 있고 국가적 자해 행위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양측의 주장은 기찻길과 같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로 인한 소모적 논란과 갈등을 잠재우려면 “사실 확인 및 논의에 근거한 의사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롤링스 박사 저서의 시사점을 다시 생각해보자. <
정재준 부산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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