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서울 동작을 선거구는 17대 대선 여당후보였던 정동영 후보와 오랜 자신의 지역구를 뒤로하고 서울로 차출된 당시여당 한나라당의 5선 의원 정몽준 후보의 맞대결이 성사되어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었고 그 만큼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사달이 난 것은 2008년 4월 2일. 정몽준 후보는 자신을 취재 중이던 MBC 보도제작국 김 모 여기자의 뺨을 건드렸다. 해당 여기자는 현장에서 “성희롱입니다”라고 소리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던 정몽준 후보는 야당들의 사퇴압박과 MBC 보도제작국의 강경한 대응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음날 MBC를 직접 방문하여 정식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물론 후보를 사퇴하지는 않았으며 당초 박빙으로 예상됐던 선거전에서 뉴타운 광풍을 타고 여유롭게 6선 고지를 밟았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9년 4월. 공전을 거듭하던 국회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야3당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과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매개로 소위 패스트트랙 지정에 합의하여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러나 두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위원회 위원 3/5의 찬성을 필요로 했다. 공수처설치법안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관이며,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관이다. 관건은 내홍을 거듭하고 있던 바른미래당이었는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인 오신환 의원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겠다고 의사를 표명하자,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신환 의원을 사임시키고 채이배 의원을 보임하여 패스트트랙 지정을 관철하고자 했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제1야당을 무시한 폭거라고 확신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희상 의장을 찾아가 바른미래당의 사보임을 허가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실력행동에 나섰다. 4월 24일의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국회의장과 자유한국당 의원들 간의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이는 작은 몸싸움으로 전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문희상 의장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막아섰으며, 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의장은 이들을 물리쳤다. 이에 자유한국당의 비밀병기 임이자 의원이 나타나 문희상 의장을 가로막으며 “의장님 손대면 성희롱이에요”라며 경고를 잊지 않는다. 문희상 의장은 어이가 없는 듯 손바닥으로 가볍게 임이자 의원의 볼을 튀긴다.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성추행 사건’의 완성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자유한국당이 문희상 의장의 성추행 사건을 유도했느니, 의장이 한 행위가 성추행에 해당하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또한 문희상 의장이 옛날 사람이라서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건의 전말을 보면 문희상 의장은 충분히 자신의 행위가 사건화 될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임이자 의원의 볼을 만졌다는 것이다. 6선을 지낸 7순이 넘은 국회의장으로서는 너무 경솔한 행동이었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여당도 제1야당도, 군소 3정당도 자신들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정치문제다. 당연히 싸워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야 하는 문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이다. 문희상 의장을 사퇴하라는 요구는 과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희상 의장이 임이자 의원에게 사과하고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11년 전 정몽준 의원의 ‘성희롱 사건’ 때 민주노동당 대변인이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브리핑에서 정몽준 후보의 후보직 사퇴와 해당 여기자 및 모든 여성과 국민들에게 석고대죄 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문희상 의장이 그에 대한 답변을 지금 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성인지감수성을 올리는데 크게 기여할지도 모른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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