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상고심 재판을 받는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신청을 불허했다. 유영하 변호인이 ‘건강상의 이유’와 ‘국민통합’을 내세웠지만 검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정치권에선 ‘박근혜 석방’이 정치권 이해관계 속에 이뤄지는 것으로 실제 석방 가능성은 매우 낮게 내다봤다. 박근혜 석방론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내 친박·비박에 집권여당인 민주당까지 얽히고설킨 속내를 알아봤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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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황(親黃)·친박(親朴)·비박(非朴) 계파 갈등 ‘재현’불보듯
- 야권發 보수대통합 ‘걸림돌’?… 핵심 키는 문 대통령 ‘손’에

서울중앙지검은 4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신청을 최종 불허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불에 데이고 칼로 살을 베는 듯한 디스크 통증’ 등이 현행법상 형집행정지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날 결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수형 생활은 계속된다.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3월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의 상고심 구속 기간이 지난 4월 16일 만료됐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기소된 옛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여서 17일부터 기결수 신분으로 바뀌어 2년형 집행이 시작됐다.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특별사면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법무부가 현행법상 특별사면을 하려면 ‘형이 확정된 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농단 사건 등의 재판이 진행 중인 박 전 대통령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 지난 4월17일 김경수 지사의 경우처럼 보석도 석방제도 중 하나지만 재판 중인 미결수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보석신청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게 가석방인데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을 채워야 해 형이 결정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보석·가석방·형집행정지 물 건너가…남은 건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에서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16일 민경욱 대변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는 제하로 논평을 냈다. 한마디로 국민통합적 차원에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달라는 주장이다.

특히 보수진영에서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박 전 대통령의 대한 석방이 여야, 좌우로 나뉘어 대치된 현 정국을 타개하고 ‘화해와 포용의 정치’를 보여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 대통령이 ‘결단’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종용한다면 이는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로 처벌을 받을 소지가 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의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사실상 대통령의 결단으로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이 이뤄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이 내년 20대 총선전에 석방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카드는 관련 3가지 혐의를 조기에 인정하고 형을 확정받은 다음 문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박근혜 석방은 자유한국당 내 친박 비박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과반의석 이상을 목표로 하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소환되고 있다는 인상이 깊다. 일단 박근혜 석방을 강력히 주장하는 곳은 한국당 내 친박계 인사들이다.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에 오른 황교안 대표 역시 ‘박근혜 석방론’에 동조하고 있다. 황 대표와 친박계가 석방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태극기 세력 등을 포함한 영남권에 폭넓게 퍼져 있는 박 전 대통령 지지세를 총선때까지 유지하기 위함이다.

총선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황 대표 입장에서는 당내 확실한 우군이 미진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을 활용해 총선에서 확실하게 자기사람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친박계 역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역사 속으로’ 묻혀야 할 운명이지만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 대학살’을 당한다고 해도 18대 총선처럼 ‘친박 연대’를 만들어 나서는 ‘플랜B’가 생기는 것으로 나쁘지 않다.

반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해 당을 탈당했다가 복당한 비박계 22명의 인사들도 박근혜 석방론을 촉구하는 청원서에 이름을 올린 점도 눈에 띈다. 선봉에는 김무성 의원이 있다.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김 의원은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대표로 제출한 ‘박근혜 석방 청원서’에 서명했다. 한국당 소속 67명에 무소속 의원 등 국회의원 70여 명이 참석했다.

 
비박계·복당파 좌장 김무성 ‘석방편지’ 왜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한국당 내 22명의 복당파에게 편지를 보내 ‘박근혜 구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김 의원은 편지를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뇌물과 직권남용 혐의는 억지스러운 데가 많다”며 “33년이란 형량은 지나치고 가혹하다”고 박 전 대통령 석방의 타당성을 제시했다. 이로 인해 상당수 복당파 의원이 청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김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이 친박계에 정치적으로 이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찬성을 넘어 복당파에게 서명을 촉구한 것을 두고 시각이 분분했다. 일단 앞서 설명했듯 박 전 대통령 석방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에서 향후 보수통합의 선봉에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왔다.

아울러 ‘친박 갈라치기’ 일환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되면 비박계보다는 친박계가 더 원심력이 발동해 당을 뛰쳐나갈 공산이 높다”며 “김 의원은 과거에 손학규 대표와도 만나 보수대통합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는데 걸림돌은 친박계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인사는 “친박계가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공천 물갈이 대상으로 될 경우 총선 전에 자연스럽게 보수통합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김 의원과 황 대표의 보수통합을 기치로 한 ‘친박 2선 후퇴론’은 지난 당대표 경선에서 ‘황-김 연대론’이 근거가 되고 있다. 요지는 선거 초반 비박계의 지지를 받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비박계 좌장이자 복당파인 김무성 의원과 연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하지만 당대표 경선이 치러지면서 김 의원은 오히려 오 전 시장이 아닌 황 대표와 연대설이 흘러나왔다. 당시 당대표 선거에서는 현역의원과 당협위원장은 당헌·당규에 따라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후보자는 공식적으로 현역의원을 상대로 지지를 요구할 수 없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다.

오 전 시장은 본인의 ‘탈계파 선언’을 빌미로 김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선거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 의원 역시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없는데 도와줄 수 없고 그동안 해 온 게 있어 황 대표를 지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측근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황 대표가 대표직에 오르는 데 우호적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황-김 연대론’이 존재했던 게 아니냐는 시각이 경선 후 나오기도 했다.

결국 비박계·복당파 인사들이 ‘박근혜 석방’ 촉구서에 대거 참여해 뒤늦게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박근혜 석방’이 선거에서 자신들에게 나쁘게 작용할 가능성이 적다는 데 기인한다.

한편 ‘박근혜 석방론’을 가장 즐기고 있는 곳은 집권여당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 전 석방이 가능하려면 박 전 대통령이 조기에 혐의를 인정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내리는 경우 외에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석방의 키는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손에 달렸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정부가 오히려 ‘총선전’ 박 전 대통령을 석방시켜 보수 분열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 보수 신당이 만들어져 보수를 분열시켜 집권여당의 총선 승리를 노릴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계 의원들이 주가 돼 18대 총선의 ‘제2의 친박 연대’를 구성할 수 있다. 여당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총선 구도다. 1여다야 구도로선 ‘정권심판론’이 분산될 가능성도 높다.

 
박근혜 석방론 핵심 키는 ‘1여다야’ 총선 구도
 
보수정당인 한국당에서 이를 모를 리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이 보수통합과 총선 승리에 ‘양날의 검’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받아들이기도 거절하기도 힘든 딜레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전 대통령이다. 감옥에 있어서도 그의 ‘석방’을 두고 여야 셈법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분명한 점은 핵심 키는 전현직 대통령이 갖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조기에 혐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그리고 문 대통령이 조기에 특별사면을 내리느냐 마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은 요동칠 공산이 높고 여야간 희비는 극명하게 교차할 것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석방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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