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생일을 맞으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준다.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기쁜 일로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생일이 되면 선물을 주고 따로 축하 파티를 열기도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국가든 국가가 탄생한 날이 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 문명국가들은 사람의 탄생일과 같은 의미의 ‘건국절’이 있는 것이다. 건국절이 되면 정부는 이 날을 국경일로 삼고 각종 축하 이벤트를 열어 국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건국절이 실종돼 버렸다. 한동안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지키는가 싶더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진보 역사학자들이 “‘건국 60년’이라는 말은 ‘임정 법통 계승'이라는 현행 헌법에 정면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건국절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어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역사 인식이 “‘임정법통계승'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인정하지 않고 ‘임정법통론'을 주도하며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1919년을 건국절로 삼는 듯한 인상을 짙게 심었다. 

그랬던 이들이 최근 돌연 태도를 바꿨다. ‘임정법통론’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8년 건국론’을 반박하는 ‘임정법통론’ 역시 남북 분단 상황에서 남한의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체제 경쟁 논리가 돼 버렸다며 ‘1948 건국론’과 ‘1919 건국론’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찌 됐건 이들의 화려한 ‘변신’에 어처구니가 없다. 1948년도 아니고, 1919년도 아니라면 대한민국의 건국절은 도대체 언제라는 말인가. 

이들의 태도가 지난 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19년을 건국절로 하게 되면 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게 돼 1948년 9월9일을 건국절로 기념하고 있는 북한은 명확하게 ‘괴뢰 집단’이 돼야 하는 까닭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역시 올 들어 그동안의 스탠스에서 후퇴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은 신년사와 3·1절 기념식에서 “내년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라고 말하는 등 ‘임정법통론’을 따르는 행보를 보여 왔다. 

그런 문 정부가 올 들어서는 지금까지 ‘건국 100년'이라는 용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건국절 논란의 소모성 때문인지 아니면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 ‘건국 100년’을 사용하기가 껄끄러워서인지를 모르겠지만 건국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 역사 쟁점이다. 한 나라의 뿌리를 찾는 중차대한 일이란 말이다. 뿌리를 모르는 민족은 역사를 운운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들이 건국절이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고 건국절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한탄스럽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된 나라치고 건국절이 있는 경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독립기념일이 있고 프랑스에는 혁명기념일이 있으나 건국절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독립기념일을 사실상 건국절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와 역사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건국절 문제를 정권 차원에서 볼 게 아니라 일반국제법과 국제사회의 통념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역사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나이가 71살인지 100살인지 모른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선조들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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