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넘버3’로 배우는 종업원 관리

피터 드러커는 인재를 발탁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부터 먼저 봐야 한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심지어 종업원을 채용할 때 새로 목욕하길(bath) 강요하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마치 교회의 신자들이 치러야 하는 ‘세례’와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세례를 받아야만 종교의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참고로 세례를 뜻하는 그리스어 ‘밥티스마’라는 말은 ‘침수(浸水)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점에 착안, 단돈 2,000 달러로 전공과는 무관한 액자 제작사(artist’ frame service)를 창업해 크게 성공한 CEO 제이 골츠(Jay GHoltz, 국내에는 중소기업 경영자의 필독서가 된 <사장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경영노트>란 책의 저자로 소개된 바 있다)는 종업원 채용의 완결판 ‘Bath 테스트’를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97년에 제작된 한국영화 <넘버3>에서 이미연과 박광정의 바람난(?) 섹스신. 전에는 무심코 보았던 장면이다. 속으로 “불필요한 신 아냐?” 그랬는데, 이제야 좀 이해된다. 송능한 감독이 왜 그랬는지를. 의도적으로 오리배를 뒤집고 남녀 배우를 왜 침수시켰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만약, 이 장면이 빠졌다면 섹스신은 거친 강간신으로 보이지, 그토록 섬세하고 아름다운 러브신으로 남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명장면이다. 내가 본 영화에서 섹스신으로는 참 아름답기가 단연 최고다.

‘경영’ 알아야 ‘종업원’ 관리
건달은 혼자다. 그래서 무섭지 않다. 하지만 깡패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혼자서 조그맣게 구멍가게 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경쟁자는 없다. 그 한계가 뻔해서다. 하지만 종업원을 두고서 장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영이 무엇인지부터 사장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경영을 모르면 피 튀기는 시장에서 버티기(marketing)가 무지 힘겨워진다. 아니 곧 무너질 게 뻔하다. 그렇다면 경영이 무엇이냐. 피터 드러커는 “경영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 개인이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에 모으고, 그들을 함께 작업시키는 과업을 가능하게 해준 ‘실용적 지식’이다”라고 <위대한 혁신>에서 언급한 바 있다.
책 읽기가 겁난다면 영화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넘버3>는 최고경영자에게 ‘강추’하고 싶다.
암흑가 조직 도강파의 최고경영자는 보스 강도식(안석환)이다. 그는 영화가 시작되는 초반부에 책상에 앉아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공부하는 CEO인 셈이다. 그의 조직이 하극상 쿠데타로 위기에 빠지고 목숨이 오락가락할 때 영화 속 주인공 태주(한석규)는 과장에서 일약 일등공신으로 이사급 자리(넘버3)를 낚아채는 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태주는 경영이 아직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는 처지다. 병원에서 골목길로 이리저리 겨우겨우 절뚝거리는 몸으로 도망치면서 우스꽝스럽게 사과를 집어먹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소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재밌는 장면 때문에 비슷한 영화 <친구>와 다르게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 보아도 웃음이 실실 나오게 만드는 영화가 <넘버3> 아닌가 싶다.
카메라가 방안을 비춘다. 태주가 들어서고 현지(이미연)가 보인다. 그리고 보스의 아내 지나(방은희)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림에 찰칵 주목하시라. 누워있던 보스가 일어서면서 태주를 향해 왼손을 펼쳐든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등을 보이며 일어서자 태주는 얼른 담배를 건네고 담뱃불을 공손하게 붙인다. 보스는 태주에게 말한다. “쿠데타를 진압해야지”라고. 동시에 하수에게 고수가 알려주듯 “외워둬라. 이래서 히든카드가 필요한거야”하면서 전화를 돌린다.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의 조화
재떨이(박상면)에게 뭔가 주문하고 지시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드러커의 말마따나 강도식 보스는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태주는 칼잡이다. 반면에 재떨이는 별명처럼 재떨이가 무기이며 싸움에 쓰이는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조직에 모을 줄 아는 최고경영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소설 삼국지(三國志)의 유비에겐 청룡언월도의 관우, 장팔사모의 장비, 신출귀몰의 지략으로 적장의 간담을 서늘케 만든 제갈공명이 조직원이지 않았나. 이처럼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동등한 기술과 똑같은 수준의 지식을 조직 인력으로 한데 모아서는 경영자가 항상 언제까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2개월에 걸친 하극상 쿠데타 진압에 성공한 강도식 보스는 의자에 앉아서 멋진 명언을 남긴다. 말인즉슨 이렇다. “너희 둘 다(태주와 재떨이) 에이스지. 에이스 원페어 들고서 포커하면 돈 잃을 일 없을 거야”라고. 간과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 속 랭보(박광정)는 시인으로 나온다. 그런데 시인의 수업방식이 재미있고 독특하다. 시인은 ‘필링(feeling)’을 유독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금 전 어떤 필링을 느꼈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현지와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재떨이에 대한 담론(談論)도 서로 나눈다. 장면은 모텔 방안. 시인은 꽁초를 이렇게 표현한다. “제 영혼을 불사르고 죽은 영혼”으로, 그러자 수업중인 학생 현지는 “재떨이를 칼 대신 쓰는 사람도 있죠”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자꾸만 피식하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조폭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그림이 깨끗해 보이고 재미있는 이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또 여성을 상대하는 브랜드 네임에서 영어 ‘C’와 ‘S’가 참 많이 사용되는 이유를 깨달았다. 예를 들면 Cadillac(캐딜락), Calvin Klein(캘빈 클라인), Canon(캐논), Capri(카프리), Cartier(카르띠에) 모두 우연인지 몰라도 영어 대문자 C로 시작된다. 영어 대문자 S로 시작되는 브랜드 네임도 엄청 많다. 일본의 Sony(소니), 한국의 Samsung(삼성), 젊은 여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커피 체인 Starbucks(스타벅스), 시계로 유명한 Swatch(스와치) 등이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오지나(방은희)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나(여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딱 세 가지이지”라고. 이어서 “캐시, 크레딧카드, 섹스”라고 현지에게 강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나는 그만 무릎을 치고 말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앞으로 상호나 브랜드 네임을 지을 때 참조하시라. 여성에게 가장 호감을 주는 브랜드의 영어 첫 글자는 무조건 ‘C’나 ‘S’로 작명할 일이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발음은 ‘ㅋ’에 가까울수록 좋다. 시오노 나나미의 명저(名著) <로마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카이사르’, 제비의 전설적 인물 ‘카사노바’처럼. 과거의 여자들뿐만 아니다. 현대의 여자는 물론이고, 미래의 여자들도 그런 발음과 매우 유사한 브랜드 네임을 몹시 좋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왕래가 많은 길가에 간판 제목에도 마찬가지로 상호 작명하길 당부한다. 그래서였을까. 조폭다운 싸움 장면이 연출되는 룸살롱의 상호도 제법 골 때리는(?) 언밸런스 네임이다. 간판명이 ‘카오스(chaos)’여서다.

땀 흘리면 ‘CEO’ 아니면 ‘보스’
왜 보스이고 왜 CEO라고 부를까. 영화는 조필(송강호)과 마동팔(최민식) 검사의 메시지를 통해 관객에게 거듭 강조하고 있다. 조직원 셋을 앞에 두고 점잖게 조필은 말한다. “불한당이란, 아니 불, 땀 한…”이라고.
아파트 놀이터다. 드디어 태주와 마동팔은 치고 박고 한판 싸운다. 싸움이 끝난 뒤 마동팔 검사는 말한다. “땀흘려 일하지 않는 ××는 모두 불한당”이라고. 이쯤되면 눈치 챌 것이다. 알다시피 보스는 땀 흘려서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한당의 보스인 것이다. 하지만 CEO는 다르다. 땀 흘리는 법을 알고 있다.
영화 <넘버3>를 통해서 가장 인기를 모은 배우는 주연 한석규, 최민식이 아니라 송강호다. 송강호 그는 이 영화 전만해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초록물고기>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넘버3>에서 어리버리한 골통 부하 3명과 함께 좌충우돌하는 연기를 관객에게 아주 인상 깊게 선보이면서 브라운관의 대스타로 떴다. 특히 흥분을 하면 말을 떠는 장면에선 배꼽 빠지는 관객이 아마 수두룩했을 것이다.
조필(송강호). 그가 강조한 ‘헝그리 정신’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자 장안 최고의 화제였던 그림이다. “에취, 유, 엠” 말해놓고 뒷말을 까먹었다면서 부하를 패는 장면을 대개는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최고경영자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주고 싶다. 어쩌면 ‘이거다’라고 강조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조직의 이념을 저버린 하극상 세력은 모두 제거됐다. 최고경영자는 인재를 발탁할 때 조직의 이념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재를 모아야 성공한다. 그런데 강두식 보스가 놓친 게 하나 있다. 넘버2와 넘버3의 다툼이 생기게끔 방조한 게 죄라면 죄다.
제이 골츠가 강조했던 것처럼 ‘능력이 있는지?’ 파악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팀플레이가 과연 가능한지’를 늘 예의 점검해야 한다. 최고경영자나 소점포 사장이나 똑 같이 해당되는 게 있다면 암흑가 조직이나 비즈니스 세계나 “364일 긴장하다가 겨우 하루만 풀려도 당한다”는 강두식의 조언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헝그리 정신인데, 성공에 목말라하는 부하와 함께 할수록 조직은 커지고 발전하는 법. 이 점을 놓쳐서는 결코 최고의 경영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넘버2나, 넘버3가 최고가 아닌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제이 골츠가 주장한 ‘Bath 테스트’를 시스템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뛰어난 인재를 갖추었다고 자랑할 만하더라도 팀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면 한낱 잡초나 돌덩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 Tip 영화 속 장사 몇 수 배우기

‘삼류’와 ‘일류’ 종이 한 장 차이

첫째, 배반형의 인력을 절대 뽑지 말라.
조필(송강호)이나 강두식(안석환)의 뛰어난 점은 이것이다.
둘째, 필링(feeling)과 ‘C’, ‘S’가 소점포 경영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다
필링이 없다면 함부로 창업하지 말라. 또 소점포일지라도 여성 고객을 상대로 한다면 간판 이름조차 호감을 주는 상호로 지어야만 한다.
셋째, 성공하는 사랑과 경영의 가장 닮은 점은 ‘Bath 테스트’를 반드시 거친다는 것
일류와 삼류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사전 준비가 철저한 게 일류라면 거꾸로 소홀한 채 들이대는 게 삼류다.
<심>

Bath 테스트
그들이 회사 이념을 받아들이는가?
(Do they buy into the concept?)
그들은 능력이 있는가?
(Are they able?)
팀플레이를 하는가?
(Are they team players?)
배고픈가?(Are they hungry?)
출처:<사장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경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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