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패스트트랙 지정을 두고 한 차례 격돌을 하며 예열을 했던 제1야당과 여야4당은 결국 지난 30일 새벽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안건을 처리했고,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및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안건을 처리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거세게 저항했지만 국회선진화법마저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로써 국회 내에서의 공방은 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이게 된 반면, 수의 논리에 완패를 당한 자유한국당이 거리의 정치로 승부수를 띄우면서 내년 4월 15일 예정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수 싸움이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세력들에 대한 강력한 압박의 수단으로 전락한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가자 수가 5월 2일 현재 17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맞불작전으로 더불어민주당 해체를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시작되어 청와대 답변 기준 수인 20만 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쯤 되면 정치의 과잉이다.

이러한 정치의 과잉 시기에는 국민 분노가 폭발하고 그 분노는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를 향하게 된다. 여당도 야당도 도매금으로 넘어가서 결국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진영논리가 작동하여 국회해산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이 난무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청와대는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하면서 사태를 즐긴다. 그리고 잊지 않는 말 한마디. “정파에 따라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격해지고, 지지하는 국민 사이에서도 적대감이 높아져 걱정스럽고 힘들다” 5월 2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보합세 내지 부정평가가 근소하게 우위를 보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4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의 대통령 국정운영지지도 조사는 부정평가가 47%로 긍정평가 44%를 앞서고 있다. 대통령도 여야 대치국면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함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이게 나라냐!”며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새로운 정부를 시작한 지 2년이 다가오지만, ‘나라다운 나라’의 형상은 아직도 신기루 같다. 적폐청산을 부르짖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힘이 부족해서 적폐청산이 안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적폐청산의 로드맵이 부재한 상황에서 적폐청산의 구호만으로 정국을 주도하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 적폐청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정부여당이다.

지난 2-3년 동안 정부여당에게 있어 적폐청산은 전가의 보도였다. 그러나 총선이 다가오자 제1야당이 거세게 저항한다. 그만큼 적폐청산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적폐청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노의 정치로 국민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일까?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책임 있는 정부여당이라면 지금이라도 적폐청산의 명확한 로드맵과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후의 대한민국 국가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에 따라 국민들이 정부여당을 신뢰할 것인지 결정하게 되고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적폐청산의 로드맵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현 정국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불이 자신에 옮겨 붙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가 박근혜 정부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청와대가 알게 되는 순간은 이미 늦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보다 적극적인 국정운영이 필요한 때이다. ‘나라다운 나라’ 빨리 만들어서 정쟁의 늪에서 여야정치인을 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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