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본 사람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이 지난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 내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은 장시간 화재로 인한 현장 훼손으로 과학적 검증 가능한 화재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 내사종결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이 지난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 내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은 장시간 화재로 인한 현장 훼손으로 과학적 검증 가능한 화재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 내사종결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통신대란'을 불러온 KT아현지사 화재에 대해 5개월 간 내사를 벌여온 경찰이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내사 종결 방침을 밝혔다.

화재 원인을 규명해 내지 못해 책임자 처벌도 어렵다. 소식이 알려진 직후 소상공인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불만이다.

5개월 수사에도 발화 원인 못 밝혀 //  법령 개정 및 관리체계 개선 권고뿐

KT가 집계한 보상 대상자는 모두 2만3000여 명. 하지만 이 가운데 지금까지 피해 보상을 신청한 소상공인은 1만3000여 명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소상공인연합회는 KT의 피해보상액에 불만이 있는 상인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화재 이후 KT는 화재 원인과 상관 없이 상인들에 대한 보상과 함께 올해 약 1700억 원, 3년간 모두 4800억 원을 들여 통신재난 안전망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소상공인연합회 등이 참여한 'KT 화재 상생보상협의체'에서 지역 상점의 서비스 장애복구 기간에 따라 1~2일 구간은 40만 원, 3~4일 구간은 80만 원, 5~6일 구간은 100만 원, 7일 이상은 12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키로 했지만 불만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피해보상 한다지만...

일요서울이 지난 1일 서대문 일대에서 만난 상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피해 본 사람은 있는데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울분이었다. 또한 통신 먹통에 따른 피해액 산출이 제대로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홍대에서 의류 매장을 관리하는 A씨는 "통신먹통이라서 손해본 게 얼마인데 몇 푼 쥐어주고 끝내려 한다"며 "매출조사 똑바로 한거 맞는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통신 먹통 이후 단골손님들이 뜸해졌다"며 "한 손님이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됐냐고 물어 그제서야 알게됐다"고 했다. 사고 이후에도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KT 측과 상인들 간 법적 공방도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이번 사태와 관련 성명을 내고 "국가기간망이 화재로 마비되는 대형사고의 원인을 몇 달간 조사한 결과가 ‘확인불가’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회 과방위 위원들이 화재 원인을 규명할 자료를 KT에 요청했지만 KT 측은 대외비 등을 명분으로 일부 자료의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지난달 17일 열린 청문회에서 드러났다"며 "KT 아현지사 화재의 근본 원인은 KT가 평소에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연합회는 "경찰이 이번에 발표한 ‘원인 모름’이라는 조사결과는 약관 개정, 손해배상, 사고 원인 규명, 방지 대책 마련 등에 국회와 정부 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화·실화 가능성 낮아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KT아현지사 건물 지하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10여 시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 화재로 지하통신구 112m 구간 중 79m가 불에 탔다.

이 불은 서울 중구 마포 서대문구로 통하는 유무선 케이블과 광케이블로 옮겨 붙으면서 KT추산 489억 원의 피해가 났다. 서울 서부지역 일대 통신과 금융이 일시에 마비되는 '통신대란'을 빚었다.

이와 관련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은 "2018년 11월 24일 11시 KT지하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에 대해 발생직후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수사 전담반을 편성해 방화 실화 등 발화원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지점과 화재원인을 밝히기 위해 광범위한 내사를 진행했다"며 "(하지만) CCTV상 통신구내 출입자가 없고 9시간의 걸친 화재로 통신구 내 발화지점을 한정하지 못함에 따라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발화원인을규명하지 못해 내사 종결한다.(할 예정이다)"고 했다. 다만 "(경찰은) 내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문제점에 대해 제도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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