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도급구조로 ‘막장인생’ 최소한의 권리 보장받지 못해

지난달 27일 형틀목수인 노광숙 씨가 오전 7시께부터 서울 용산구 소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동료 건설 근로자 1명과 40m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다 오전 10시 11분께 추락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7일 형틀목수인 노광숙 씨가 오전 7시께부터 서울 용산구 소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동료 건설 근로자 1명과 40m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다 오전 10시 11분께 추락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최근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던 건설 근로자가 추락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임금체불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업체는 근로자 2명이 타워크레인에 오르자마자 이들에게만 임금을 지급하겠다며 회유했고, 사고가 발생하자 실제로 이들을 포함한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만 임금을 지급했다. 나머지 근로자 300여 명은 정당하게 일한 근로의 대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와 지자체가 임금체불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복잡한 재하청 구조 등 건설현장이 변화되지 않는 한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 존중 사회’에 도달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 벌이자 농성자들에게만 임금 지급
근로기준법 지키지 않아 ‘상습 체불’ 빈번…“처참한 현실”

“복잡한 도급구조로 ‘막장인생’을 살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은 법에 있는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지난달 30일 건설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고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건설사’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사들은 건설노동자를 부려먹는 노예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밀린 임금을 받으려 고공농성을 하던 노동자가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지고, 불법 도급을 근절하라고 촉구한 노동자는 건설사 반장이 휘두른 흉기에 다쳤다”며 “건설사가 노동자를 함부로 대해도, 임금체불을 일삼아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노동 당국은 악덕 건설사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땀 흘리며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임금체불, 폭행 사건을 일으킨 건설사는 건설 노동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항의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서울건설지부와 경기도건설지부는 지난달 29일에도 서울시청 앞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김희영 서울건설지부 현장사업팀장은 “이번 타워크레인 추락 사고는 불법 하도급업체도 아닌 국내 굴지의 메이저 건설사인 롯데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창년 서울건설지부장도 “건설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 역시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체결하지 못한다. 특히 불법하도급의 경우 건설 노동자들이 입는 피해가 더 크다. 표준근로계약서를 보장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김기창 경기도건설지부장은 “밀린 임금 달라고 하는 것이 문제냐,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생긴다. 건설 노동자가 처한 처참한 현실이다”라고 개탄했다.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이러한 임금체불 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달 11일에는 억대 외국산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도 공사현장 근로자들의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건설업자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광주지검 공안부(부장검사 이희동)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건설업자 A(47)씨를 직접 구속했다고 지난달 11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7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관급공사 등을 하며 근로자 20명의 임금 6000만 원을 체불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A씨는 임금체불과 관련, 총 14회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간 임금체불 피해를 입은 근로자만도 100명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속 전 A씨는 회사 명의의 억대 외국산 차량을 타고 다녔으며, 재산을 자신의 가족 명의로 돌려놓기도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또 주민등록상의 주소지가 아닌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 명의의 법인 5개를 설립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A씨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 대부분은 공사현장 근로자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러한 임금체불 피해를 막고자 확대를 추진 중인 ‘임금직불제’도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직불제는 원청 건설사가 근로자의 임금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미 직불제를 운영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도 임금체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원청이나 발주처가 전자시스템을 통해 근로자 계좌번호로 임금이 바로 가도록 해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협력업체가 현장 근로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계좌 번호를 입력하는 등 편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복잡한 도급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급여 미지급 문제 피해는 모두 건설 근로자들이 떠안게 된다”며 “왜 위험하게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냐고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당한 근로를 제공하고서도 월급이 밀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근로자들의 입장도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3월 21일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건설 현장 하도급 관행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대금 지급, 임금체불 등을 방지하는 ‘대금e바로시스템’에 블록체인 등의 신기술을 적용해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올해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 2020년까지 새로 단장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해당 시스템을 통해 공사대금 체불 등 불공정 하도급 실태를 상시 모니터링한다. 또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현장 집중점검을 시행한다. 아울러 근로자 임금 체불, 장비·자재대금 체불과 불법·불공정 하도급 행위 등을 살필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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