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기 만든 드론 1218개의 비밀, 당초 2000개 떴다는데…

송승환 PMC프러덕션 예술감독 [뉴시스]
송승환 PMC프러덕션 예술감독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1년이 넘었다. 평창에는 이미 동계올림픽의 흔적이 지워진 지 오래다. 하지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성화대에서 펼쳐진 김연아 선수의 아이스댄싱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박종아·정수현의 성화봉송 그리고 밤 하늘을 수놓았던 드론이 만든 오륜기가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김창준정경아카데미에서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았던 송승환 PMC프러덕션 예술감독에게 평창 동계올림픽 뒷이야기와 난타 제작기를 들어봤다.

 

제작자 변신 이유 “배우로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팔수 있는 상품 만들어야 흑자 낼 수 있다 생각”


송승환은 넌버벌(비언어극)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로 유명하다. 물론 그 이전에는 유명 연기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1965년 방송에 데뷔한 송승환은 그야말로 대스타다. 방송, MC, 연극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배우로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었다”라며 “배우라는 직업은 어찌 보면 선택권이 없는 직업이다. 캐스팅이 돼야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송승환이 본격적으로 연극을 제작하기 시작한 건 20대였던 1980년대였다. 그는 “내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로 캐스팅이 되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 욕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방송에서 번 돈으로 연극을 만들었고 부족한 돈은 CF를 찍어가며 충당했다. 이런 활동을 반복하다 그는 뮤지컬에 눈을 뜨게 된다. 1990년대 들어 국내에는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공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뮤지컬은 연극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 결국 그는 공연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송승환은 “공연도 하나의 상품이다. 세계시장에 팔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공연을 통해서도 흑자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자본의 문제는 소재의 독특함으로 해결하자”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전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 난타다.

 

비언어극 난타
한류 대표 관광상품

 

난타는 이제 대표적인 한류 관광상품이다. 지난 1997년 자본의 한계와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전통가락인 사물놀이 리듬에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엮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비언어극인 만큼 전 세계 어디서나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 

난타를 만들고 해외 진출을 시도했던 초기 에피소드는 눈물겹다. 해외 에이전트들에게 수차례 메일을 보내고 영상까지 보여줬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송승환은 심지어 한국에서 연극을 하느냐는 반응까지도 나왔다고 소개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한국은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난타는 브로드웨이 아시아라는 세계적인 공연기획사와 인연이 되면서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다. 당시 브로드웨이 아시아 임원을 통해 난타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상품성을 검증받기 위해 1999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난타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페스티벌 기간에 1단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공연 전문지 ‘The List’ 선정 ‘1999년 에딘버러 공연작품 Best 10’에 선정됐다. 이후 난타는 미국, 일본 등지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22년째 공연 중이다. 

현재 난타는 명동, 홍대, 제주, 방콕 등에 전용극장을 갖추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도 전용관을 열었지만 사드 여파로 문을 닫고 휴업 중이다. 지금까지 총 공연횟수 44,821회, 총 관객수 13,825,849명, 전 세계 58개국 317개 도시에서 공연 중이다. 난타의 성공 요인은 결국 문화였다.

하늘이 허락한
성공적인 개폐막식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을 맞게 된 송승환의 가장 큰 고민은 차별성이었다. 평창을 시작으로 2022년은 일본 2026년에는 중국에서 연이어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송승환은 평창올림픽 준비기간이었던 2년 넘는 기간 중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매일 매일 공연전문가, 스테프, 교수, 정부 관계자들과 회의, 리허설의 연속이었다.

고민 끝에 송승환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가치인 조화와 융합을 메인 테마로 열정과 평화라는 키워드를 끄집어 냈다. 그리고 고구려 벽화, 백제 금동대향로에 등장하는 인면조와 한국 대표 문화유산 22종 등을 활용해 한국의 고대, 근현대, 미래를 표현했다. 

준비 기간에 송승환의 가장 큰 고민은 추운 날씨였다. 영하 20도의 강추위, 폭설, 초속 18~20m의 강풍은 공연을 준비하는 스테프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폐막식 하이라이트였던 플라잉 무대와 LED석탑은 강풍으로 설치를 끝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러한 날씨의 어려움은 개회식과 폐회식 단 이틀간만 예외였다. 최대 초속 20m로 불던 강풍은 개회식날의 경우 초속 0.3m로 잦아들어 성공적인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사실 송승환은 개폐막식을 준비하면서 예산으로 인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추위 문제 해결을 위해 개폐막식 장소 지붕 설치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고 무대에 설치된 지하 리프트 문제도 요구만큼 반영되지 않았다. 

당초 송승환은 예산이 1000억 원 정도로 알았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600억 원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송승환은 “저비용, 고감동으로 만들라”고 했던 조직위 관계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드론으로 만든 개막식 오륜기. 당시 기네스북에는 드론 1218대로 만든 오륜기가 등재됐다. 하지만 송승환에 따르면 당시 하늘에 띄운 드론은 총 2000대였다. 기네스북에 2000대가 아닌 1218대가 기록된 이유는 임무를 마치고 생환한 드론 수였다.     

송승환은 개막식 하이라이트였던 마지막 성화 봉송 순간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당초 마지막 주자는 이미 정해졌었지만 남북평화 무드에서 갑자기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박종아, 정수현으로 바뀌었고 개막식 하루 전날까지도 리허설에 참석하지 못해 개막식 당일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며 가슴 졸였던 순간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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