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하고 일주일 만에 이 영화를 봤다. 그 일주일동안 잘 다니던 인터넷 커뮤니티도 발길을 끊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접속하는 것도 몸을 사렸다. 미리 영화내용을 누설당할까 두려웠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람 전날 저녁에 아이언맨이 죽는다는 불의의 소식을 접하고, 허탈한 마음을 부여잡고 영화관에 들어서야 했다.

영화는 즐거웠다. 지금껏 나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를 모두 본 입장에서 장대한 스토리로 구축된 한 세계가 문을 닫는 것을 지켜보는 아련함도 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앞선 21개의 영화를 다 보지 않으면 온전히 즐기기에 쉽지 않은 편이다. 이 좁은 한국 땅에서 1,000만 관객을 넘어서기 어려운 결정적인 약점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는 개봉할 때마다 죽을 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영화로 구축된 세계관을 넘어 미국인들에게는 우주적 스케일의 신화이자 전설로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관객들과 달리 스타워즈의 서사를 따라 갈 기회를 놓쳤고, 이후 나온 스타워즈시리즈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스타워즈와 어벤져스가 다른 점은 우리 관객들이 어벤져스의 세계관을 충실히 따라왔다는 것이다. 어벤져스 시리즈 첫 영화인 아이언맨이 흥행하면서 마지막 영화인 ‘엔드게임’의 핑거스냅에 격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까지 감당한 ‘엔드게임’의 핑거스냅은 우주에 평화를 가져왔고 영화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히트시킨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다. 유교수의 말대로 어떤 일이든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초지종을 알아야 몰입도 가능하고, 공감하는 일도, 정확한 판단도 가능하다. 내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라도 알아야 그 사안과 내가 연결되고 이해관계를 타산할 수 있지, 모른다면 남의 일처럼 잊혀 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 개혁논의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관심과 공감을 사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절반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선거법은 내용자체가 이해가 어렵다. 오죽하면 국회에서 “비례대표 계산방식, 국민은 알 필요없다”라는 말을 했느니 안했느니 논란이 있었을까.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패스트 트랙을 막자 많은 사람들이“도대체 저 사람들이 왜 저러나?”하며 어리둥절해 했다. 소강상태인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자유한국당이 그럴만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은 필연적으로 다당제를 구조화시켜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핑거스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은 정치학계에서 정초선거라고 불리는 58년 총선, 87-88년 대선-총선을 통해 보수-진보 양당구도의 제1당 지위를 안정적으로 누려왔다. 특히 지역과 결합된 양당구도가 확립된 87년 체제에서 자유한국당은 안정적인 1당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지금 이대로’를 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양당구도가 무너지고 다당제가 되면 영남에 기반을 둔 제1당과 호남에 기반을 둔 제2당이 한국정치를 독식하는 구조도 무너진다. 지역은 더 이상 정치의 볼모가 아니게 되고, 극한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상이 일상이 될 것이다. 문제는 ‘엔드게임’영화에서처럼 누가 손해를 보면서 한국정치를 바꿀 핑거스냅을 할 것인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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