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 80년대, 386 세대 운동권을 대표하던 ‘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체’의 약칭이다. 운동권의 상징과 전설처럼 추억의 단어가 될뻔한 이 단체명이 지난달 만우절에 대자보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하였다.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는 제목과 대자보 내용, 디자인만 얼핏 보면 마치 북한 당국이 제작한 대자보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간부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등 각종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읽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금의 우리 현실을 패러디한 내용이라는 것이 확연해 지면서 헛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패러디(parody)의 어원은 '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린 노래' 또는 '모방하는 것'의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패러디란 '반대'와 '모방' 또는 '적대감'과 '친밀감'이라는 상호모순된 양면성을 기본 개념으로 하고 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이 최소한의 반대 목소리를 내고자할 때 친밀감을 활용하여 저항하며 쓰는 기법인 것이다. 패러디는 잘되면 큰 웃음을 자아내게 되지만 잘못하면 아는 사람만 재미있고 모르는 사람은 헷갈리게 되어 혼란만 불러일으키고 흥미 자체를 떨어뜨리게 된다.

 현 정부의 실정을 풍자하기 위해 ‘전대협’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청년들. 그들의 고단수 패러디가 일상화된 정쟁에 식상해있던 기성세대에게도 큰 웃음을 자아내면서 전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등 청년 현안과 직결되는 정책의 실패 앞에 청년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적대감’을 ‘친밀감’으로 승화하며 모순적으로 쏟아내게 되었을까.

 일각에서는 그들에 대해 극우 청년단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지만, 지금 청년들의 삶이 기존 386 세대가 살아온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청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학술 스터디 단체라고 한다. 더구나 민주당, 정의당 당원도 함께하는.

 그런데 정부 관계당국의 대응은 어떠한가. 그들이 풍자를 통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귀 기울이기에 앞서, 옥외광고물 불법부착, 명예훼손, 모욕 등을 들어 젊은이들의 뒤를 캐고 지문감식이나 CCTV로 확인해 추적하고, 심지어 초기에는 국가보안법 적용도 고민을 했다고 하니.

 보수진영의 반응은 또 어떠한가. 모처럼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좋아하며 통쾌함을 전하는 격려 글들이 봇물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어떤 성숙 과정을 거쳐서 그런 명문장(?)을 만들어내고 어떤 용기와 절박함으로 실행에 옮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배경은 관심조차 없다.

  최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심재철 의원의 진실공방에서 “자신의 진술서는 첫대목부터 완전히 창작이었고, 자신의 진술서로 비밀조직은 보호됐다”라는 유 이사장의 주장에서 유추해 보더라도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서조차 창작, 풍자와 해학은 약자가 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었으리라.

 전대협이 이끌었던 386 운동권 세대는 분명 사회적 이슈에 민감했고 본인들이 세상을 바꿔야 하는 주체라는 생각이 강했던 세대였으며 그 간판인 이인영 의원이 여당의 원내대표까지 된 세상이다.

그런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에서 저항의 상징인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의 부활(?)이 과연 이념, 노선으로 경도된 치기어린 젊은이들의 해프닝 정도로만 치부될 일인가. “웃자고 한말에 죽자고 덤빈다”는 어느 예능인의 말이 허탈한 쓴웃음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서원대학교 교수/전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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