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일 강성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장외투쟁에서는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발언을 쏟아 내고 국회에서는 원내대표로서 행동대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나 원내대표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몸집’을 키워 ‘거물 정치인’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뉴시스]

- 황교안 ‘대체재’와 ‘보완재’ 사이... 대권 ‘고지앞으로’
- 공천·총선, 황교안-나경원 운명 가른다

지난 3월 12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을 했다. 이에 여당이 맹렬히 비판하며 국회 본회의장이 마비됐지만 나 원내대표는 발언을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연설을 마치고 나와 지지자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프랑스 여전사 잔다르크에 비유해 ‘나다르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 지지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文 향한 ‘칼’여권공격 타깃 돼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을 지나오며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한층 거세졌고 이로 인해 여당 의원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자정을 전후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통과하자 나 원내대표는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그들은 좌파독재의 새로운 트랙을 깔았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 민주를 유린했고 모든 권력을 그들의 손아귀에 뒀다”고 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앞서 이날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아서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나 원내대표를 향해 “지금 좀 미친 것 같다”며 “한국당 지지율이 오른 것을 자기 덕이라고 흥분해 있다. 제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표현으로 바꿀 생각 없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진심”이라며 표현을 정정하지 않았다. 우 의원은 나 원내대표를 향해 “원내대표가 된 목적이 존재감을 드러내서 다음 단계로 가려는 일종의 징검다리용”이라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분 캐릭터 이미지와 함께 “독재 타도? 헌법수호? 이 말은 뭔 말이냐”는 글을 올리고 댓글에는 얼굴을 찡그린 나 원내대표의 사진과 함께 “끄응”이라고 쓴 바 있다. 한국당은 두 의원을 모욕죄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 원내대표는 엄청난 인파에 서로 뒤섞여 피아가 식별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유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이유는 발판이다”라며 “나 원내대표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불쑥 솟아올라왔다. 그렇게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누군가가 인파를 헤집고 그가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잽싸게 깔아준 것”이라 전했다.

이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권력의지로 나 원내대표 주연에 299명의 나머지 의원들을 조연으로 세우고 수많은 보좌관들을 엑스트라 삼아 막장이라 흥행할 수밖에 없는 액션 영화 찍으려고 국회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추악한 욕심이 읽힌다”며 나 원내대표가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내다봤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새 與 원내대표 이인영 상대로 협상 주도하나

지난 8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고 민주당의 20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에 3선의 이인영 의원이 선출됐다. 정치권에서는 이전부터 새로운 여당 원내대표가 당선 인사를 하기 위해 나 원내대표를 찾아 한국당의 원내 복귀에 대한 협상의 물꼬를 틀 거라고 내다봤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 다음 날 취임 인사차 나 원내대표의 사무실을 찾아 “국민의 말씀을 잘 듣고 그만큼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경청하겠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다. 5월 임시국회를 열어서 민생을 챙기는 국회 본연의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고 한국당이 서둘러 국회로 복귀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고 했는데 ‘설마 청와대 말을 잘 듣겠다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 원내대표를 당황스럽게 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하는 부분이 확대되면 좋겠다”며 “결국 어떤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선봉에서 이끈 운동권 출신의 3선 의원이다. 나 원내대표가 ‘까칠한 강성 운동권’ 이미지의 이 원내대표와의 협상을 주도해 한국당이 원내에서 유리한 입장이 된다면 나 원내대표는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에게까지 협상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될 전망이다.

벌여 놓은 일 수습 못하면 모든 화살 본인에게로

나 원내대표가 전방에 나서 ‘전진 앞으로’를 외치고 있는 만큼 자신이 벌여 놓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패스트트랙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온몸으로 야4당을 막아섰고 2012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동물 국회’가 펼쳐졌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국회 본청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누비며 총력 투쟁을 진두지휘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및 심상정 정치개혁특위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가 “이게 국회인가 그러면서 국회 선진화법을 이야기하나 원천적으로 불법은 누구인가”라며 따져 묻자 심 위원장이 “뒤에 숨어있지 말고 나오라”고 말했고 이 대표는 “한번 혼나볼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의 이름을 외치며 옹호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반대 투쟁에 전력으로 나서 지지층을 결집시켰지만 이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국회법 위반 혐의로 한국당 의원 49명과 보좌진 4명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경우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검찰이 제1야당 의원들을 대거 수사하는 데 부담을 느껴 내년 총선까지 재판이 완료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당선 후에도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게다가 한국당 지도부에선 검찰이 기소한 의원에게 공천을 주기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나 원내대표도 이를 의식했는지 사태가 심각해지자 즉각 태도를 바꿨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국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제1야당에 대한 고발과 협박을 멈춰 달라”며 “(고발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수사를 하더라도 탄압을 하더라도 나를 하라. 우리 당의 다른 의원들과 보좌진에 대한 고발 취하 즉각 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회는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하며 장외투쟁을 이어가고 있어 마비 상태다. 3월 임시국회와 4월 임시국회가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등의 법안 논의 등 쌓여있는 민생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끝났다. 민주당은 말로는 돌아오라고 하지만 한국당에게 숙이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황 대표와 당의 운영 방향에 대해 의논하고 합의를 하겠지만 국회 내부인 원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원내대표가 결정한다. 황 대표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고발된 의원 중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거나 검찰 기소에 대한 부담으로 내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해 항의해도 황 대표에겐 책임이 없다.

민생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일정 논의도 원내대표가 담당한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이 길어져 민생법안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해 일하지 않는 국회의 모습을 보인다면 나 원내대표가 모든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나 원내대표는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등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지 않아 몸집 불리기마저 힘겨운 실정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선출된 나 원내대표 임기는 1년으로 오는 12월까지지만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으면 다음 총선 때까지 원내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황교안 불가론’이 확산되거나 황 대표가 ‘공천 칼날’을 휘둘러 살생부 등 당내 잡음이 생긴다면 한국당은 나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세우는 방안을 구상할 수 있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이 민주당을 누르고 승리할 시 기세를 몰아 황 대표는 대권, 나 원내대표는 서울시장을 바라볼 수 있다. 반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정치 신인인 황 대표는 백의종군하고 나 원내대표가 구심점이 돼 새로운 ‘판’을 기획할 수 있어 나 원내대표의 ‘꿈’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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