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카게무샤(影武者)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적을 속이기 위해 대장 등의 용모를 흉내 내어 똑같은 복장을 시킨 무사를 뜻하며, 둘째 뒤에서 숨어 지도하는 막후 인물, 배후 조종자 등을 뜻한다.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어휘는 아니다.

카게무샤가 일본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위의 첫째 의미로서 1980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화하여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무라이 영화 ‘카게무샤’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본고에서는 첫째 의미로서의 카게무샤가 아닌 둘째 의미로서의 카게무샤로 사용하고자 한다.

국회 홈페이지에는 매일매일 국회의장의 일정이 공개된다. 물론 사적인 일정까지 공개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곳에 공개되는 일정은 국회의장의 공식 일정이 된다. 지난 5월 16일의 국회의장 공식 일정은 두 개였다. 하나는 오전 10시, 양정철 신임 민주연구원장 예방(의장 집무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전 11시, 오신환 신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예방(의장 집무실)이었다.

오신환 원내대표의 예방이야 당연한 국회의장의 공식 일정이 되겠지만,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예방이 국회의장의 공식 일정이 되는 것은 다소 의외다.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의 수장으로서 예방하는 것이지만,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국회의원도 아닐 뿐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인 정당의 싱크탱크 수장이 국회의장을 공식 방문하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복심이니 핵심실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이력은 외국어대학 법학학사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 홍보수석실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으며, 2008년 노무현재단 사무처장,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메시지 팀장을 지냈고, 2013년 노무현 시민학교 교장을 지낸 것이 정치권 이력의 대부분 이다. 물론 그 외에도 적지 않은 일들을 했을 것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의도적으로 정치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충성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언론의 관심 속에 있었으며, 그의 행방 하나하나가 언론에게는 특종이었다.

그에 관한 기사는 그가 민주연구원장으로 내정된 때부터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그가 민주연구원으로 첫 출근 하는 날, 언론은 정권실세인 그에게 예우를 다해 환대해주었다. 국회의장조차도 그의 예방을 공식화 해주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예방하고 나온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국회의장이 “집권당이 정책과 비전, 수준 높은 담론들을 차분하게 잘 준비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고 전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전략통으로 꼽히는 이철희 의원과 재선의원 출신의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백원우 전의원을 부원장으로 내정했다고 한다. 의원출신도 학자출신도 아닌 사람이 여당의 싱크탱크 원장을 맡은 것 자체가 파격이니, 전현직 국회의원을 부원장으로 하여 보좌하게 하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국회의장도 그를 단독으로 면담했을 것이다.

민주연구원은 과거 국회의원이 아니었던 박순성 동국대 교수가 원장이었던 적이 있다. 그는 2012년 총선패배 후, 연말의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총선평가보고서를 만들었지만, 당시 당의 중추에 있던 친노 인사들에 의해 철저히 배격되며, 결국 대선마저 망친 아픈 기억이 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카게무샤와 같은 실력자라면 그러한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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