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이후 외부감사 ‘0회’ 고려대학교, 첫 교육부 감사에 ‘된서리’

지난 15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15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15일 오후 12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는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손에 피켓을 하나씩 들고 등장한 학생들은 현수막을 펼친 뒤 학교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규탄하는 외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고려대 내에서 ‘관행’으로 이어지던 ‘황금열쇠’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고려대 학생회 “적발된 비리와 규모 예상 뛰어넘어”

학생이 직접 학교 재정 운용에 참여하는 계기 될까

고려대는 지난 8일 교육부가 발표한 회계 부분 감사 결과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8년 6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 8일간 실시된 감사에서 최근 3년간 무려 22건의 비리를 자행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포함한 교비회계의 부적절한 집행으로 회수 처분된 금액은 8억 5천만 원을 넘어섰다.

부적절하게 집행된 금액의 대부분은 교직원을 위해 사용됐다. 먼저 81개 부서에서 299차례에 걸쳐 1억 8천만 원에 달하는 순금·상품권을 구입해 교직원 235명에게 지급했다. 지급 액수는 적게는 1인당 10만 원부터 많게는 240만 원에 달했다. 또 고려대 산하 고려대의료원 직원들은 유흥주점과 단란주점 등에서 법인 카드로 630여만 원을 결제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려대 교직원 3명은 정년퇴임하는 전임 비서실장에게 개인적인 선물로 줄 543만 원짜리 황금열쇠를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다른 영수증과 섞어 지출 결의서를 올린 것으로 알려지며 ‘은폐’ 의혹까지 일었다.

불과 4개월 만에 내부감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나.

고려대는 매년 자체적으로 내부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총학생회는 1월 8일 제1차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의거, 학교 측에 감사보고서를 요청했다. 그러자 학교위원들은 “감사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학교위원들은 일주일 뒤인 1월 15일 제2차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지적사항 없음’이라고 적힌 내부감사 결과 자료를 제시했다. 학교 재정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후 내부감사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앞서 적었듯 교육부 감사 결과 각종 비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립대학교인 고려대의 비위와 ‘거짓 감사’는 학생은 물론 전 국민에게 충격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학교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자 고려대 측은 이튿날인 9일 홈페이지를 통해 ‘고대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글에는 ▲교육부 회계감사 지적 사항의 시정 및 제도 보완 ▲관련 사안에 대한 징계 ▲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혁신위원회(가칭) 구성 등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후속 절차 방안이 담겼다.

특히 혁신위원회의 경우 외부의 독립적인 전문가 집단을 참여시켜 제도와 절차를 정비하고 모범규준을 정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잃어버린 내부감사의 신뢰도를 되찾겠다는 의지는 어느 정도 표명한 셈이다.

시간강사·학내 노동자 처우 개선도 요구

그러나 입장 표명이나 다짐 정도로는 이미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기자회견을 연 학생들이 외친 것은 단순한 ‘제도 보완’이나 ‘위원회 구성’이 아니었다. 이들은 회계 불투명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를 뿌리 뽑길 바랐다. 학생을 비롯한 학내 구성원이 직접 학교 재정 운용에 참여해 실험환경 등 수업환경 개선을 이뤄내고, 해고된 강사와 수업을 캠퍼스 안에 돌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두 번째 발언을 맡은 사범대학 교육학과 학생회장 김다혁 씨는 “본교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부 감사 자료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22+α개의 문제점들이 과연 찾을 수 없던 것인지, 찾을 수 없도록 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들은 대학본부의 재정 운용과 의사결정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으며, 관련 자료를 요청해도 학교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또 “대다수 학생들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등록금을 내온 것은 비록 학교가 학내 구성원들에게 재정 정보를 밝히는 것에 보수적이지만, 그럼에도 운영 자체는 성실하게 진행할 것이라는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제는 그 신뢰마저 무참히 깨져버렸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114년 역사 고려대, 외부감사는 0회

추첨식으로 진행되는 사립대학 부분 회계 감사에 고려대학교가 추첨되지 않았다면, 학내 구성원을 농락하는 법인과 회계 운용이 앞으로 몇 년이나 계속되었을지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학생들은 “우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학본부는 재정 및 학사 운영에 학내 구성원을 참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학교의 상황을 풍자하는 전시회와 천막 농성, 월요집회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과 학내 구성원들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반면 학교 측은 ‘고대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 이후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총학생회장 김가영 씨는 일요서울에 “입장문 외에 별다른 내용은 듣지 못했다”고 했고, 커뮤니케이션부 직원 역시 “학교 입장은 입장문에 다 들어가 있다”는 답변만 내놨다.

고려대는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교육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문 대학이다. 그러나 이번 감사 결과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학교 안팎에서 고려대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가시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과연 고려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학생과 학내 구성원들은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될까. 지켜보는 눈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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