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에 도전장을 내민 과학 -2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쟝 바오쉥(張寶勝)은 스푼이나 포크를 녹여 붙이는 용착 능력을 시연했다. 유리병 안에서 약제를 병 밖으로 꺼내는 능력도 선보였고, 병 안으로 종이를 집어넣기도 했다. 물론 병의 뚜껑은 봉인된 상태였다. 봉인된 유리병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집어넣는 것은 속임수의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공과는 약간 다른 차원이지만 초능력 현상에 대한 연구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서양에서 초능력에 대해 먼저 뛰어든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초능력,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았고, 폴트 메싱을 만난 후 1950년 4차원연구소(초능력개발연구소)를 세웠다.

폴트 메싱은 폴란드에서 태어난 세계최고의 초능력자였다. 그는 히틀러의 비참한 최후를 예언, 노여움을 샀다.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나치는 폴트 메싱의 목에 20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걸었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폴트 메싱은 1940년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스탈린 앞에 끌려갔다.

스탈린은 폴트 메싱을 시험해보기 위해 3가지 제안을 했다. 첫 번째는 고즈 은행에서 10만 루브르를 인출해 오라는 것이었다. 메싱은 하얀 백지를 은행 출납계원에게 내놓고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은행원은 어찌된 일인지 아무 말 없이 10만 루브르를 내놓았다. 이 은행원은 나중에 비밀경찰로부터 수표를 확인한 후에서야 백지라는 사실을 알고 기절해버렸다고 한다.

스탈린의 두 번 째 시험은 크렘린궁을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크렘린궁은 겹겹이 감시망이 펼쳐져 있어서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메싱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크렘린궁을 걸어서 나왔다.

세 번째 시험은 신분증이나 통행증 없이 별실에 머물고 있는 스탈린을 면회 오라는 것이었다. 메싱은 이 역시 통과했다.

“어떻게 크렘린궁에서 나왔으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올 수 있었는가?”

스탈린의 질문에 메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단합니다. 나는 베리아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베리아는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였다. 스탈린은 메싱의 초능력을 국방에 활용하기로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소련에 4차원연구소가 만들어지게 됐고,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이 분야의 연구소를 만들어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일본은 1998년에 국가차원에서 초능력과 초자연현상의 연구비로 1억 엔, 뇌 연구에 100억 엔의 연구비를 투자했다. 미국은 텔레파시기술과 뇌파의 에너지 증폭기술로 멀리 떨어진 사람의 의식전환을 바꾸는 연구까지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이제 초능력자와 과학자는 물론 정부와 국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초능력 분야를 차세대 미래 원천기술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국가차원에서 연구소도 설립하고 대학에서도 강좌를 개설하여 다음세대를 위한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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