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노조 “정치적 목적이자 지역 이기주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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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공공기관 및 일부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 논란이 뜨겁다. 국회에서 이를 위한 법안 발의가 한창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균형발전 정책의 주요 방안으로 거론되는 122개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공공기관의 1차 지방이전 당시 많은 기관들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이 추가로 이전한다 해서 입지를 굳힐 수 있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오히려 직원이탈로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실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017년 2월 전주로 이전한 이후 인력 200여 명 중 50여 명이 사표를 냈다. 실장급 인사 8명 중 6명이 회사를 떠났다. 협력 기관들과 업무 차질을 빚어 혼선이 이어지기도 했다.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당시 큰 효과 못 봐…추가 이전 실효성 의문 ‘여전’

공공기관 유치에 지자체 및 지역 국회의원들이 뛰어들고 있다.

지난 13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연 대담에서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 겸 지방혁신균형발전추진단장은 “내년 총선 때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122곳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약을 내놓을 것을 당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정부가 좀 더 힘 있게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려면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놓아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을 중심으로 한 법안발의 소식도 들린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9일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기업은행 본점을 대구로 이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곽 의원은 "우리나라는 금융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이전의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시의 경우 전체 사업체 중 중소기업 비율이 99.95%에 달하고 종사자의 97%가 중소기업에 속해 있어 기업은행의 대구이전이 바람직하다"며 "신용보증기금 본점이 위치해 기업은행과의 연계를 통한 적극적 중소기업 자금지원이 가능하고 대구 스타기업 육성사업 등 중소기업 성장정책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강조했다.

선거 이기려 균형발전 명분 걸어

대구시는 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통해 '중소기업 원스톱 지원체계 모델'을 구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법 개정을 통해 기업은행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정당은 한국당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을 각각의 지역 기반으로 옮기겠다며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북이 지역구인 김광수 평화당 의원은 산은 본점과 수은 본점의 전북 이전을 추진하도록 산은법과 수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운천(전북 전주을) 바른미래당 의원, 이춘석(전북 익산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전북 지역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이에 질세라 부산에 지역구를 둔 김해영 민주당 의원은 산은 본점과 수은 본점을 부산에 두겠다며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는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바른미래당 의원, 조경태(부산 사하을) 자유한국당 의원 등 다른 정당의 부산 지역 의원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들이 한결같이 내세우는 명목은 지역균형발전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의원들의 치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국책은행 지방이전 법안 발의에 대해 14일 “국가경제의 근간을 담보로 사익을 추구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시도”라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반발했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국회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수은은 순이익의 6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기관인 만큼 해외 바이어나 외국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며 영업하려면 서울이 더 도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에둘러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 2월에도 복수의 금융 노동조합 등은 성명을 통해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한민국 금융 산업을 포기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부 국회의원들이 다가오는 차기 총선 승리와 본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산, 전주 등으로 이전하겠다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며 "지역이기주의를 국가균형발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제 금융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서울의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며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 등 국제 금융 중심지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용 민심 얻기에만 몰두하고, 우리나라 산업변화를 주도해나가는 금융에는 무지하다"고 덧붙였다.

지방 이전 찬성 여론 미약 수준

당사자인 산은과 수은, 기업은행은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 반대의사를 공개적으로 내비칠 경우 '괘씸죄'에 걸려 지방 이전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지방 균형발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조차 금융 중심지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수출 지원, 산업육성 등의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두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경쟁력과 효율성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뜻을 보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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